사회 사회일반

[외국인 정책 이대로 좋은가] 난민소송 기각돼도 무제한 재신청 가능...취업·체류에 악용

<4> 허술한 난민 행정·제도

심사·소송 처리기간 3년 넘게 걸려 "불법체류 보다 낫다"

난민신청 4년새 5.6배 늘었지만 담당인력 2배 증가 그쳐

'허위 난민' 브로커까지 기승...적발해도 손 쓸 방법 없어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과 사무실이 난민신청자와 심사대기자로 가득 차 있다. /권욱기자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과 사무실이 난민신청자와 심사대기자로 가득 차 있다. /권욱기자






“여기 이 주소를 영어로 번역해줄 수 있나요(Could you translate this address to English)?”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별관 3층에 있는 난민과로 올라가던 기자에게 2층 창가에 있던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말을 걸었다. 부동산 임대차계약서에 적힌 ‘경기도 포천시’로 시작하는 한글 주소를 영어로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부탁을 들어준 뒤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자 “레퓨지(Refugee·난민)”라고 답했다. 인도 출신의 무슬림이라는 그들은 종교적 박해 때문에 난민신청을 한다고 했다. 난민과 사무실로 들어서자 어림잡아 40여명에 달하는 외국인들이 의자에 빼곡히 앉아 있었다. 난민과의 한 관계자는 “새로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과 심사면담이 잡힌 사람들이 섞여 있다”고 말했다.


12일 법무부와 외교당국 등에 따르면 국내 난민신청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에 난민을 신청한 외국인들은 2014년 2,896명에서 지난해 1만6,173명으로 5.6배나 급증했다. 올해 1월에도 1,010명이 새로 난민신청을 했다. 그러나 1차 심사 인력은 같은 기간 18명에서 44명으로 2배 정도 느는 데 그쳤다. 1차 심사 담당자는 하루에 1.5명 정도를 면담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따라서 지금 누적된 1차 심사 대기자(지난해 말 기준 1만7,179명)만 심사해도 13개월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지난해 1차 심사 처리 기간인 평균 7개월에서 2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늘어지는 난민신청 처리 기간은 돈벌이를 이유로 난민제도를 남용하려는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이 된다. 난민신청 시 합법체류 자격이 주어지며 6개월 이후부터는 단순노무직종 취업자격을 주기 때문이다. 또 1차 심사 후에도 이의신청 단계에서 1년여, 행정소송에서 1년여 등 통상 3년여가 걸려 그 상태 그대로 체류할 수 있다. 난민신청을 하면 그 결과와 상관없이 불법체류 상태로 불법취업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한 셈이다.



결국 이는 남용적 난민신청자가 늘어나 신청 처리 기간이 길어지고, 길어진 신청 처리 기간이 다시 남용적 난민신청자를 더 끌어들이는 악순환을 빚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심지어 비전문취업 비자인 고용허가제(E-9)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난민신청 비자(G-1-5)로 전환된 사람만도 지난 5년간 1,460명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는 고용허가제 최장 체류기간인 9년8개월을 거의 다 채우고 난민신청에 나선 이도 있었다.


더군다나 현재 난민제도에서는 허위로 난민신청을 한 것이 명백한 외국인에 대해서도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다. 지난해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는 법무법인 Y 대표변호사 강모씨와 중간모집책 등 12명을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잇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 2년여간 ‘파룬궁’ 등 종교 신봉자로서 박해받고 있다는 허위 사유로 184명의 난민신청을 도운 혐의였다. 이들은 불법취업한 외국인들을 물색해 난민신청을 권한 것으로 드러났다. 184명은 수사 과정에서 특정된 수일뿐 더 많은 난민신청자가 이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이민조사대는 파악했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 사람들도 허위 사유로 난민신청하는 것을 도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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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사대가 허위 난민신청자들의 정보를 심사 담당자에게 넘긴다고 해도 좀 더 빨리 면담을 잡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허위 난민신청 적발을 이유로 난민심사를 종료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브로커들이 난민신청자들에게 “나중에 걸려도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장담하는 이유다. 이민특수조사대 관계자는 “이 같은 난민신청 브로커 일당은 물론 개인 브로커도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에서 적발된 허위 난민신청 브로커 일당은 2016년부터 2년6개월 동안 필리핀·태국인 난민신청자의 25%를 도운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허술한 난민제도 남용의 백미는 ‘재신청’이다. 1차 심사와 이의신청에서 연달아 불인정을 받고 행정소송을 걸었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더라도 다시 난민신청을 할 수 있다. 법이 이를 막지 않아서다. 그러면 원점부터 다시 시작이다. 현재 난민신청 ‘5수’ 중인 사람도 있다. 난민 재신청자는 2014년 174명에서 지난해에는 1,160명으로 6배 이상 뛰었다. 물론 이들 중에는 1차 난민심사와 행정소송에서 인정받지 못한 잠재적 난민도 있을 수 있다. 다만 비진정 난민신청자들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게 문제다. 법무부는 난민 재신청자에게는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아 취업자격이 없다. 합법취업이 안 되는데 출국기간은 유예된 모순적인 상태다.



최근 남용적 난민 증가가 의심되는 국가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다. 카자흐스탄은 2014년 난민신청자가 단 한 명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2,496명으로 급증했고 러시아도 같은 기간 7명에서 1,916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난민심사가 종료된 882명 중 난민인정은 3명, 인도적 체류는 2명에 불과했고 러시아 역시 685명 중 난민인정은 10명, 인도적 체류는 3명뿐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세계적인 난민인정국과는 거리가 먼 나라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우리나라가 난민인정에 너무 박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전 중인 시리아 난민신청자의 경우 심사가 종료된 1,217명 중 난민인정은 5명, 인도적 체류는 1,177명으로 난민보호율(난민인정자+인도적 체류자)이 97%다. 이외에도 지난해 제주도 난민사태를 불러일으켰던 예멘공화국과 소수민족 박해가 심한 미얀마도 난민보호율이 각각 76%, 66%에 달했다.

난민신청 비자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지난해 말 기준 2만4,734명이다. 하지만 난민신청을 통해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은 3만여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난민신청자 가운데는 기존 비자를 난민신청 비자로 전환하지 않은 사람들과 난민 재신청자여서 체류자격을 잃은 사람들도 있는 만큼 정확한 규모를 추산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조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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