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글로벌 무역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무역 적자를 본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기존 무역 규범을 해치고 더 나가 다른 국가의 도미노식 무역규제로 이어지면서 경기 침체로 연결되고 있다는 논리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투자정책 팀장은 14일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미국의 일방적 통상정책이 우리나라 주요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트럼프의 통상정책이 글로벌 무역에 발목을 잡으면서 경기 침체를 유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가장 노골적으로 손보고 있는 국가는 무역적자 규모가 가장 큰 중국이다. 사실 미국과 중국 간 통상 갈등은 뿌리가 깊다. 지난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자, 미국은 ‘비시장경제국인 중국이 상품의 정상가격을 다르게 책정하고 있다’면서 고율의 반덤핑,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2016년 중국이 ‘비시장경제’라는 꼬리표를 뗄 날이 다가오자 무역특혜연장법을 통과시킨 것도 미국이다.
중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의 통상기조 변화와 맞물려 ‘일대일로’, ‘중국제조 2025’ 등을 연달아 발표하며 미국을 자극했다. 미국은 특히 중국이 기술 탈취 등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통상 분쟁의 범위를 무역을 넘어 투자·제도·기술·외교·안보로까지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푸젠진화 등 중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제재, 도산 위기까지 간 중국 통신장비 업체 ZTE에 압박이 있었다.
관세 맞대응도 불을 뿜었다. 미국이 대중 수입액의 46.6%에 이르는 상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대미 수입액의 68%에 해당하는 1,013억달러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세탁기 등 특정상품수입이 늘어나 해당 산업의 피해가 심각하다며 세이프가드(201조)를 발동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직후 캐나다·멕시코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를 비롯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대해 개정을 요구했다. 미국은 협정의 세부 내용이 불균형하다고 주장한 반면 기존 무역체제를 무력화하는 일방적인 시도로 글로벌 경기 침체를 유도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김 팀장은 “발효 후 24년이 지난 나프타의 현대화를 명분으로 미국의 무역적자 감소를 통한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주장”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원했던 주요 골자는 △미국 픽업트럭 현행관세(25%) 철폐유예기간 20년 추가 연장 △한국 혁신 신약약가제도, 원산지 검증 한미 FTA 합치 △현지실사 사전통지 등 절차 규정 개선 등이었다. 김 팀장은 “세 차례의 개정협상을 통해 지난해 3월 원칙적인 합의를 했고 지난 1월 개정의정서가 발효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미국에 불리하다며 개혁을 요구했다. 김 팀장은 “WTO 개혁을 통해 중국의 산업보조금과 국영기업에 의한 불공정 행위, 지재권 침해 등을 규제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최초의 대통령 직속 통상 전담기구인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해 대중 강경파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철회 행정명령 서명, WTO 체제에 대한 불신 표명 및 탈퇴 언급, FTA에 대한 재검토 등 무역협정을 뜯어고쳤을 뿐만 아니라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치도 크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