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심리를 분석하는 언어의 빛과 그림자

과도한 심리학적 용어로 삶 해석

문제 해결보단 엉뚱한 부작용 낳아

트라우마 벗어날 수 있는 용기 줘야

정여울 작가정여울 작가






심리학적 용어의 과다 복용은 때론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는다. “그 사람은 콤플렉스가 심해서 툭하면 남을 질투하더라고.” “너는 자존감이 너무 낮아. 네가 늘 신경질을 부리는 것은 다 자존감이 낮아서야.” “나는 대인기피증이라 사람 만나는 게 정말 힘들어.” “그는 애정결핍이라 끊임없이 자기를 더 많이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 거야.” “나 우울증인가 봐. 매사에 의욕이 없고 식욕도 없어.” 이러한 심리학적 원인분석은 저마다 날카롭고 설득력도 있다. 하지만 어떤 해결책도 없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콤플렉스나 트라우마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모두 우울증이나 콤플렉스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즉 ‘증상’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질병’이라는 확증은 아니다.


크고 작은 문제를 잔뜩 짊어지고도 우리는 매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문제가 많다는 것은 내가 감당하고, 이겨내고, 싸워내야 할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도하게 심리학적 용어로 우리 삶을 해석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고착화해 버리는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요컨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심각한 환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일방적인 분석과 해석의 말들은 우리를 상처로부터 더욱 멀리 도망치게 만든다. 그런 말들은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상처 뒤에 숨어서 진짜 해야 할 일들을 미루게 만든다. 수업 중에 어떤 학생이 말도 없이 30분이나 사라졌다가 천연덕스럽게 다시 나타나자, 내가 물었다. “수업 중에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그랬더니 학생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트라우마가 좀 있어서요. 조용히 산책하면서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오, 이러려고 내가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가르쳐준 것은 아닌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치유의 에너지를 알려주기 위해 수업을 했지만 가끔 이런 부작용이 생긴다. 트라우마를 자신의 게으름이나 실수를 해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다면,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변명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면, 우리는 트라우마로부터 아무것도 배우고 있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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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이 증상으로 끙끙 앓던 사람이 훌륭한 연설가가 되기도 하고, 심하게 수줍음을 타던 사람이 위대한 배우가 되기도 한다. 부모에게 학대받은 사람이 나중에 자라 사랑과 지혜가 넘치는 훌륭한 부모가 되기도 한다. 심리학이 우리에게 정말 도움을 주려면 ‘당신은 이러저러한 콤플렉스와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당신은 어린 시절에 문제가 있군요’ 라고 진단하고 분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내가 나의 상처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하고, 트라우마와 용감하게 대면하여 마침내 그 트라우마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어야 한다. 심리학은 만능해결사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비춰보는 유용한 프리즘으로 작용해야 한다. 심리학적 분석에 매번 휘둘리기보다는 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힌트를 얻으면 된다. 상처 자체가 그 사람을 빛내지는 못한다. 상처를 뛰어넘으려는 불굴의 노력을 쏟아붓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눈부신 용기와 고결함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트라우마 이후의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란 트라우마로 인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트라우마 이후에 더 나은 사람,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테러나 재난 이후에 삶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고 타인을 돕는 일의 소중함에 눈을 뜨는 사람들, 상처를 입고 나서 오히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트라우마 이후의 성장’을 경험한다. 트라우마는 도피처가 아니다. 트라우마라는 마음의 요새 뒤에 숨어서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을 미룬다면, 그것이 트라우마보다 더 무서운 자기방임일 수도 있다.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의 대화를, 세상과의 소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상처로부터 숨지 않고, 상처와 정면으로 맞서고, 상처조차 마침내 내 삶의 소중한 일부로 만들어 마침내 내 그림자와 춤을 출 수 있을 때까지. 트라우마가 빛을 발할 때는 오직 우리가 트라우마로부터 치유되려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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