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현금 넘쳐도 투자 못하는 이유 정말 모르나

지난해 말 현재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 95곳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248조3,8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무려 12%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삼성그룹 계열 상장사의 현금 보유액만도 125조3,900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의 현금 보유액이 단일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선 것을 비롯해 현대차와 SK·포스코·현대모비스 등 10조원을 넘어선 곳만 5곳이다.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박근혜 정부는 기업들의 현금 보유액을 투자·고용·배당으로 유도하기 위해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투자나 고용(임금 인상), 배당을 늘리지 않고 내부에 현금을 쌓아두는 기업에 10%의 가산세를 매기는 제도였다. 기업소득 환류세제는 예상했던 것처럼 결국 실패했다. 정부가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보다는 징벌적 세제로 다스린 탓이다.

관련기사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올해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에 20조원이 넘는 돈을 사용할 계획이다. 다른 기업들도 투자와 고용 대신 배당을 늘리고 있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무턱대고 투자와 고용을 늘렸다가는 뒷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과 행동주의펀드는 경영권을 위협하며 배당을 늘리라고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배당 역시 기업들이 성장의 과실을 주주와 나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들이 이보다는 미래 먹거리 마련과 장기성장을 위해 투자와 고용, 인수합병(M&A) 등에 곳간을 여는 것이 더 급하다.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머뭇거리는 동안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이 과감한 투자와 고용에 나설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 원한다면 말뿐인 혁신성장보다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도의 보완을 통한 정책전환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것만이 정책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