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화상·감염으로 눈 각막이 손상된 환자나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자주 잃는 중증 1형 당뇨병 환자에게 무균 돼지의 생각막(전층 각막)과 췌도(췌장 내 인슐린 분비 세포집단)를 이식하는 임상시험이 몇 달 안에 국내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이종이식학회(IXA)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 이종 생각막·췌도 이식으로는 세계 최초다. 국제 가이드라인은 임상시험에 들어가려면 돼지의 췌도를 이식받은 원숭이 8마리 중 5마리 이상이 △6개월 이상 정상혈당을 유지하거나 인슐린 주사량을 절반 이하로 줄인 상태에서 비슷한 혈당을 유지하고 △1~2마리에서 1년 이상 이런 효과를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막은 8마리 중 5마리에서 그 같은 효과가 있으면 된다.
생각막은 미국 등에서 뇌사자의 것을 들여와 이식할 수도 있지만 국내 반입까지 2주 이상이 걸려 긴급한 용도로 쓸 수 없는 실정이다. 각막 손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 중에는 내피세포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아 각막 안팎의 세포층이 살아 있는 생각막 이식이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돼지 각막 안팎의 세포층을 제거한 ‘탈세포화 각막’을 100여명에게 이식한 결과 내피세포층 등에 문제가 없는 각막 손상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 췌도 이식은 췌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제1형 당뇨병 완치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지금은 인슐린 주사가 유일한 치료법인데 잦은 주사에 따른 불편과 쇼크사를 초래할 수 있는 ‘저혈당 무감지증’ 위험을 안고 있다. 사람의 췌도는 간·콩팥 이식에 우선순위가 밀려 대부분 이식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임상시험은 보건복지부 산하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과 김미금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팀, 김광원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팀이 진행한다.
관련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지난 14년 동안 약 500억원을 지원받은 사업단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성과들을 국제학술지에 잇달아 발표했다. 돼지의 췌도를 이식받은 당뇨병 원숭이가 최장 1,000일까지 정상혈당을 유지하고 돼지 각막을 이식받은 원숭이가 세계 최장기간(950일) 정상기능을 유지하는 기록도 세웠다. 지난해에는 사람에게 이식할 때 적용할 면역억제요법을 원숭이에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와 관련 법령 미비 때문에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효과를 검증하는 임상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식받은 환자가 돼지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여부를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할 정부 부처가 정해지지 않은 점도 국제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 ‘적격 임상시험’의 발목을 잡았다.
박정규 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임상시험 승인 부처를 어디로 할지, 어떤 품목(세포치료제 등)으로 분류할지 등을 결정해주지 않아 사업단 존속기한(올 5월) 안에 목표했던 임상시험에 들어가지 못해 세계적인 연구성과들이 묻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었다”고 말했다.
사업단은 이런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세계이종이식학회·세계이식학회(TTS) 윤리위원 7명과 대한이식학회·안과학회·감염학회 대표들을 초청해 ‘이종이식 임상시험 국제 전문가 심의회’를 열어 준비상황과 미비점을 점검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사업단이 윤리적·과학적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관련 법규와 정부 차원의 감독 부재 해소를 권고했다.
세계이종이식학회 회장을 지낸 리처드 피어슨 윤리위원장(미국 하버드대 의대 외과 교수)은 기자회견장에서 “돼지 췌도·각막 이식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성과를 거둔 한국의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같은 주체가 미국에 있었다면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이미 임상시험을 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이종이식 임상시험을 신청할 경우 어떤 기관이 책임지고 심의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는데 FDA가 각계 전문가를 모아 심의회를 운영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국제 전문가들의 질타는 정부에 자극제가 됐다. 첨단바이오의약품법과 첨단재생의료법 제정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던 복지부와 식약처는 역할분담을 통한 통합법안 추진 등에 합의한 뒤 사업단 지원 모드로 전환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돼지 각막·췌도 이식 임상시험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아니며 현행 법령에 따라 병원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와 식약처의 승인을 받아 진행하면 된다고 사업단에 통보했다. 서울대·가천대 연구팀은 이미 병원 IRB 승인을 받았다. 복지부는 사업단의 존속기한도 1년 연장해줄 계획이다. 식약처는 사업단 및 임상시험을 주관할 서울대·가천대병원 교수팀과 제출자료 등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식받은 환자에 대한 평생 모니터링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법이 처리되면 해결된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질병관리본부가 모니터링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초기에는 서울대·가천대병원 임상연구팀에서 모니터링을 하다가 법안이 시행되면 정부가 그 역할을 맡게 된다.
돼지 각막 이식은 오는 6월께, 췌도 이식은 하반기에 첫 임상시험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 임상시험 승인 주요 쟁점은
‘돼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면역억제제 다량 투여도 부담
이식용 각막·췌도는 생후 2년쯤 된 100㎏ 안팎의 무균 돼지에게서 채취한다. 생각막(전층 각막)은 한 마리에서 2개를 얻을 수 있고 채취도 쉽다. 하지만 췌도는 2~3마리에서 췌장을 떼어내 파손되지 않게 분리해야 이식에 필요한 양을 얻을 수 있고 분리에 상당한 노하우와 시간이 필요하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에서 무균 돼지의 관리와 췌도 분리 등을 책임지고 있는 신준섭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연구교수는 “제1형 당뇨병 환자에게 100만개 정도의 췌도세포가 필요한데 채취·이식 후 생착 과정에서의 손실분을 감안해 3마리에서 췌도세포(마리당 40만~50만개)를 분리해 이식에 쓸 계획”이라며 “한 마리당 5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각막과 달리 먼저 분리한 췌도를 신선하게 유지·보관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사업단은 1차로 각막 이식 연구자 임상시험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먼저 추진하고 췌도 이식은 2차로 진행할 방침이다.
임상시험 승인과 이식 후 모니터링 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람에게 돼지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씻어줄 과학적 근거다. 특히 돼지 유전체 안에 끼여 들어간 ‘바이러스 유전자 부스러기’인 돼지내인성 바이러스(PERV)가 사람의 유전자에 끼여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걱정거리다. 여러 차례의 실험에서 PERV 등이 검출되지 않아 임상시험 승인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사업단과 임상연구팀이 더 걱정하는 부분은 이종간(異種間) 장기이식이다 보니 사람 간, 즉 동종간(同種間) 장기이식 때보다 다양한, 그래서 더 많은 면역억제제를 써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면역력을 떨어뜨려 감염 위험을 높이는 등 부작용·합병증을 높인다.
돼지 췌도 이식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김병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돼지 췌도를 환자의 간(肝) 문맥을 통해 넣어준 뒤 돼지 췌도 모세혈관과 환자의 간 혈관이 연결돼 인슐린을 분비, 혈당이 조절되고 저혈당 쇼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돼지 췌도 이식 임상시험이 성공하면 윤건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팀이 캡슐화한 췌도를 이식하는 임상시험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임상시험과 별개로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는 유전자 변형·편집 돼지 연구도 시급한 실정이다.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에서는 유전자 변형·편집 기술을 활용해 인체에 초급성 거부반응, 급성 혈관성 거부반응 등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PERV를 비활성화한 형질전환 돼지의 췌도 등을 원숭이에게 이식해 면역억제제 없이 혈당조절에 성공하는 성과를 냈다.
박정규 사업단장은 “각막·췌도 등은 일반 무균 돼지를 활용할 수 있지만 콩팥·폐 등의 장기는 유전자 변형·편집 돼지를 활용해야 하는데 유전자변형 동식물(GMO), 유전자 가위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적잖아 이를 극복하는 것도 이종 이식, 유전자 가위 관련 연구자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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