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멈추지 않는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행보...수십년 이은 美 중동정책 흔들린다

트럼프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주권 인정할 때"

골란 고원 주권 인정하지 않았던 미 입장과 배치

트럼프, 현직 대통령 최초로 통곡의 벽 찾아 논란

팔레스타인 반대에도 예루살렘으로 대사관 이전

NYT "수십년 지켜온 美 중동정책 흔들려"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골적인 이스라엘 편들기에 나서면서 수십년 간 이어 온 미국의 중동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민감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개입하기를 꺼렸던 이스라엘과 주변국 간 문제에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시리아 내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가능성으로 불안한 중동 정세가 미국과 이스라엘 간 밀월로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현지시간) 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골란 고원(Golan Heights) 주권 문제를 언급한 이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스라엘이 시리아로부터 점령 중인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 인정을 주장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채택된 유엔 결의에 따라 그동안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미국의 입장에 위배되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 52년이 지난 상황에서 미국이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완전히 인정할 때가 됐다”면서 골란 고원에 대해 “이스라엘과 지역 안정에 전략적 안보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1967년 벌어진 이른바 ‘6일 전쟁’에서 골란고원으로 진격해 1,200㎢의 영토를 점령했다. 이어 1973년 벌어진 2차 전쟁에서 추가로 510㎢의 영토를 차지했으나 이듬해 휴전협상을 맺고 이를 반환했다. 이후 1981년 골란고원을 영토의 일부로 편입하는 법을 통과시켰으나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두 나라는 휴전협상을 통해 유엔군이 감시하는 비무장 완충지대를 설정했지만 최근 들어 마찰을 빚고 있다. 2011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맞선 봉기가 시작되면서 골란고원은 긴장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해 5월과 6월 이스라엘의 건국과 1967년 전쟁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시리아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휴전선을 넘어오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30명의 난민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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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간헐적으로 시리아 정부군은 물론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레바논의 무장 민병대 헤즈볼라와 골란 고원 일대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군과 레바논 반군이 휴전선 일대에 숨어 들어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15년 1월 이스라엘은 시리아쪽 휴전선에 포진한 헤즈볼라 반군을 공격했고 이로 인해 장성 1명을 포함한 여러 명의 이란군이 숨진 사례가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가운데)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 린지 그레이엄(왼쪽) 미 상원의원 등과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국경지대인 골란고원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베냐민 네타냐후(가운데)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 린지 그레이엄(왼쪽) 미 상원의원 등과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국경지대인 골란고원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다음달 9일 치러지는 이스라엘 총선을 불과 3주 앞두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선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이 네타냐후 총리와 골란고원 일대를 둘러보는 등 공화당에서도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베니 간츠 전 참모총장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중도 성향 후보인 간츠는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박빙의 접전을 펼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위터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을 파괴하기 위한 발판으로 시리아를 활용하려고 하는 때에 트럼프 대통령은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과감하게 인정했다”면서 “땡큐 프레지던트 트럼프”라고 강조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네타냐후 총리의 최우선 핵심 정치 의제를 미국 행정부가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 이스라엘 편을 들며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그는 2017년 5월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을 방문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21일 네타냐후 총리, 데이비드 프리드먼 주이스라엘 미국대사와 함께 통곡의 벽을 방문했다. 미국의 고위 관리가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통곡의 벽을 찾은 것은 폼페이오 장관이 처음이다. 미국의 역대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 중인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통곡의 벽을 방문하면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주권을 인정하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었다.

마이크 폼페이오(가운데)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통곡의 벽을 방문해 기도하고 있다. /예루살렘=AFP연합뉴스마이크 폼페이오(가운데)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통곡의 벽을 방문해 기도하고 있다. /예루살렘=AF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5월 팔레스타인의 강력한 반대에도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논란을 빚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며 주이스라엘 대사관의 이전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에 속하지 않는 도시로 규정한 유엔 결의안과 국제법을 존중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미국의 대사관은 텔아비브에 뒀다. 유엔이 1947년 11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의 종교적 특수성을 감안해 국제사회 관할 지역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편들기로 역대 정부들이 유지했던 중동 정책이 뒤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골란 고원 논란에 대해 “미국이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 총리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반면 수십년째 지켜온 미국의 중동 정책을 내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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