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靑 "전경련 필요 없어"...도 넘은 적폐몰이

허창수 초청 하루만에 또 패싱

허탈한 재계 "진영논리로만 바라보는 靑"

필리프 벨기에 국왕(왼쪽 세번째)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벨기에 비즈니스포럼’에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 두번째), 버나드 질리오 벨기에경제인연합회(FEB) 회장(맨 왼쪽)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필리프 벨기에 국왕(왼쪽 세번째)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벨기에 비즈니스포럼’에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 두번째), 버나드 질리오 벨기에경제인연합회(FEB) 회장(맨 왼쪽)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필리프 벨기에 국왕의 국빈만찬에 초청받은 지 하루 만에 청와대가 다시 전경련 ‘패싱’으로 돌아섰다. 청와대는 27일 전경련과의 소통복원 가능성을 일축하며 전경련의 불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재계에서는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전경련 패싱’을 고집하는 것을 두고 지나치게 감정적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구나 전경련은 이날 벨기에 국왕을 초청해 비즈니스포럼을 개최했는데 사절단이 한국을 떠나기도 전에 청와대에서 벨기에 측 파트너인 전경련의 불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벨기에 국왕 국빈만찬에 청와대 행사로는 처음으로 전경련 회장이 초청됐는데 전경련 패싱이 해소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특별히 전경련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리 정부 들어 전경련을 ‘패싱했다 안 했다’ 여부를 밝힌 적이 없다”면서도 “기업과는 대한상의·경총 등과의 관계를 통해 충분히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는 “이미 기업과의 관계에서 서로 협조를 구하고 의사소통을 하는데 제가 말했던 단체들을 통해 모자람 없이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앞서 벨기에 국왕 국빈만찬에 허 회장이 초대된 후 재계에서는 전경련 패싱이 끝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랐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를 부인하며 국정농단 세력인 전경련과의 타협은 없다는 기존 방침을 다시 확고히 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콘퍼런스센터에서 필리프 벨기에 국왕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벨기에 비즈니스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콘퍼런스센터에서 필리프 벨기에 국왕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벨기에 비즈니스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재계 “전경련 역할 필요한데 진영논리로만 바라 봐”


청와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소식에 재계는 아쉬움을 넘어 허탈함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주력 산업의 위기 등으로 경제상황이 어렵고 악화일로로 치닫는 한일관계 등의 돌파구로서 전경련 카드가 유효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일각에서는 아직도 재계를 적폐집단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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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한 임원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며 “허창수 전경련 회장에 대한 청와대 만찬 초대를 계기로 전경련과의 경색된 관계에 물꼬가 트이길 기대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미 예상했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간 산발적으로 대기업과의 관계 모색을 꾀하는 듯한 포즈를 취해왔던 정부가 기대와 달리 항상 원위치로 돌아갔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기업 실무자는 “이번 일도 한·벨기에 비즈니스 포럼의 주최자로서 벨기에 쪽에서 전경련에 대한 예우를 청와대에 부탁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예상이 많았다”며 “재정과 벤처·중기 중심의 정책 방향이나 사정 당국이 대기업을 다루는 방식, 국민연금이 대기업 주총에 관여하는 방식 등을 보면 여전히 대기업은 적폐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푸념했다.

정부의 현실 인식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4대 기업의 한 임원은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경제에 이상 징후를 느끼지 못하는 정부가 대기업에 도움을 구할 리 만무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도 “현실 경제 판단을 놓고 정부와 국민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며 “일자리도 다 대기업에서 나오는데 문제 해결의 창구를 스스로 닫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보호무역주의·과거사 등에 얽힌 국가 간 갈등을 해결할 창구로서 전경련의 역할을 살려야 한다는 고언이 적지 않았다. 실제 전경련은 지난해 2월 미국에 민간 대표단을 파견해 통상마찰 문제를 논의하는 등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장 한국산 자동차의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을 막는 데도 전경련은 힘을 보탰다. 이런 활동은 전경련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경련 국제네트워크는 경험과 노하우, 규모 등에서 다른 경제단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한미재계회의 등 31개국 32개 경제협력위원회를 통해 해외 주요국과 교류하고 있다. 최근에도 허 회장은 신동빈 롯데 회장, 김윤 삼양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등과 함께 경제사절단을 꾸려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비즈니스(B20) 서밋에 참가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경련이 과거 정권의 관행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직원 절반이 퇴사하는 등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며 “통상환경이 엄중한 만큼 글로벌 네트워크가 풍부한 전경련이 국가에 기여하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자세 전환을 촉구하는 강경한 목소리도 들렸다.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정부가 여전히 진영 논리에 기대 전경련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다”며 “재정을 통한 공공 일자리 창출도, 벤처를 통한 혁신도 대기업을 배제하고는 반쪽짜리”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도 모자랄 판인데 제정신인지 모르겠다”며 “경제가 더 악화되고 난 뒤에 변화해서는 늦다”고 말했다.
/이상훈·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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