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박삼구회장 전격 퇴진] "신뢰 회복" 朴 승부수...그룹 위기 전이 막고 3세경영 전환도

재무 리스크 확산으로 아시아나 무너질 땐 그룹 붕괴

'이원태 체제' 비상 위원회 가동...외부인사 회장 영입

국내 대형 항공사 2곳 모두 경영승계작업 불가피 할듯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회계 충격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 의사를 밝힌 28일 서울 우정국로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직원이 전화를 하고 있다.  /오승현기자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회계 충격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 의사를 밝힌 28일 서울 우정국로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직원이 전화를 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재무 리스크에 따른 시장 신뢰 추락이 결국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물러나게 했다. 금호타이어 재인수 실패 이후에도 박 회장은 그룹 재건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왔다. 하지만 금융권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시장 차입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노력은 회계 충격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감사의견 ‘한정’ 평가로 시장 신뢰가 무너진데다 외부의 지원 없이 경영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을 불러왔다. 타고난 승부사인 박 회장이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선택한 승부수는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오너 리스크’ 해소였다. 오너인 회장이 전격적으로 물러나면서 투자자들에게 신뢰 회복은 물론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도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준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차입경영’은 살얼음을 걷는 경영으로 불렸다.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한 외형 확대는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불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부터 시작됐다. 자산 총액 3조원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이 6조4,000억원에 달하던 대우건설을 삼키며 탈이 났다. 재무적투자자(FI)에게 약속한 풋백옵션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엄청난 부담이 됐다. 2008년 4조1,000억원을 투입한 대한통운 인수도 비슷한 양상으로 돌아갔다. 결국 박 회장이 그렇게 애착을 보이던 금호타이어를 팔고 남은 것은 3조9,000억원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동안 대규모의 차입금을 상환하면서 재무 개선과 경영정상화 의지를 보였다. 에어부산 지분과 인천 제2 격납고의 담보대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CJ대한통운 지분 매각,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한편 박 회장 개인 재산을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7년 4조6,000억원에 달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차입금은 지난해 말 3조원 수준까지 줄었다. 차입금 줄이기에 ‘올인’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면 재도약이 가능하다는 확신에서였다.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때마침 국제유가마저 하락하며 연료비용도 줄었고 이에 맞춰 내국인 해외여행객도 지난해 2,800만명을 넘어 올해 3,0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수요도 탄탄했다. 여객 수요가 증가하면서 매출도 함께 늘어 현금흐름에도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올 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6조8,506억원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고 이달 1,500억원의 영구채를 발행해 재무구조를 추가로 개선하겠다고 대외에 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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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달 21일 삼일회계법인이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를 ‘한정으로 평가해 공시하면서 공든 탑이 무너졌다. 개정된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로 운용리스 항공기에 대한 정비비용 충당금 설정 등을 추가로 요구하면서다. 적정의견을 받지 못한 아시아나항공은 주식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26일 재감사를 통해 적정의견을 받았지만 이미 시장의 신뢰가 낮아진 상태였다. 충당금을 추가로 잡는 과정에서 지난해 순손실이 104억원에서 1,959억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2009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돌입할 때도 박 회장은 시장의 퇴진 요구를 견뎌냈다. 하지만 지난해 기내식 업체 교체 과정에서 불거진 기내식 대란과 함께 이번 사태를 연거푸 겪은 시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더 이상 믿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주가는 폭락했고 29일 열리는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에서는 박 회장과 이번 ‘한정 의견’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시장성 차입의 일정 비율을 주채무계열 선정기준에 포함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압박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적정의견을 다시 받아내기는 했지만 아시아나항공은 그룹에 폭탄과 같은 존재”라며 “그룹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아시아나항공이 유동성 문제로 무너지게 된다면 그룹 자체가 분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용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박 회장까지 퇴진을 결정하면서 국내 대형 항공사 2곳은 이제 ‘3세 경영’을 갑작스레 맞이하게 됐다. 국민연금이 재선임에 반대하면서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 회장 모두 뒷일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갑작스러운 퇴진인 만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나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으로의 경영승계 작업이 부족한 상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금호고속의 경우 박 회장이 31.1%, 박 사장이 21%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진그룹을 지배하는 한진칼의 경우 조 사장의 지분은 2.34%에 불과하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승계 작업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정리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성호·구경우기자 junpark@sedaily.com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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