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 클럽 버닝썬 사태로 시작된 이른바 ‘승리 게이트’의 ‘나비효과’로 배우 차태현과 개그맨 김준호도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경찰이 가수 정준영의 휴대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KBS2 TV ‘1박2일’ 멤버들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수백만원대 내기 골프를 쳤다고 자랑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준호는 지난 2009년에도 해외 원정 도박 파문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한 바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온라인 공간에서 두 사람을 옹호하는 의견이 더 많다는 점이다. 일반인도 ‘내기 골프’ ‘내기 당구’를 즐기는데 연예인이라면 내기 판돈도 큰 게 당연하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들 연예인의 소득 수준을 감안해도 수백만원의 내기 골프는 도박죄이라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도박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은 사과 이후 형식적인 자숙 기간을 거쳐 연예계로 복귀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인들이 ‘돈 많은 연예인들이 도박 좀 할 수 있지’라는 차원을 넘어 자신들도 도박 불감증에 빠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연예인은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직업 상위권에 꼽힌다. 청소년들의 행동·태도·가치관 등 전반적인 부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셈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부작용으로 청소년들이 불법 인터넷 도박이나 온라인 내기 게임에 접근하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다. 연예인들의 도박이 청소년들의 일확천금에 대한 환상이나 사행심을 더 부추길 수 있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10대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와중에 연예인들을 우상화하고, 모방하고 동조하려 한다”며 “연예인들의 일탈 행위조차 멋있게 느껴져 ‘도박하는 용기가 대단하다’와 같은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연예계 스타들의 도박 사건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1박2일’ 단체 대화방의 한 참여자는 ‘거의 신고하면 쇠고랑이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태현과 김준호는 물론 다른 연예인들도 도박을 즐겼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승리 게이트’는 다른 유명 연예인들의 해외 원정도박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승리가 2014년 자신의 사업 파트너에게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2억원 땄어요. C호텔로 넘어오시면 ‘담당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갬블 혜택이 좋습니다”라고 보낸 카톡 기록을 입수해 조사 중이다.
지난해에는 인기그룹 SES 출신 가수 겸 배우 슈가 26차례에 걸쳐 총 7억9,000만원 규모의 해외 원정 도박을 한 혐의로 큰 충격을 줬다. 평소 가정적인 세 아이 엄마의 모습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2월 서울동부지법 재판부는 “상습 도박으로 일반 대중 및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연예인으로서의 영향력은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이에 따라 슈의 죄는 가볍지 않다”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예능인 신정환은 2003년과 2005년 상습도박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도 2010년 다시 물의를 빚었다. 그는 필리핀에서 도박 빚으로 억류돼 방송 녹화에도 불참했지만 뎅기열에 걸려 병원에 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2013년에는 김용만, 탁재훈, 이수근, 가수 H.O.T. 출신 토니안, 붐, 가수 신화 출신 앤디, 양세형 등 연예인들이 줄줄이 불법 스포츠 도박을 즐긴 사실이 드러났다. 휴대폰 문자를 이용해 해외 프로축구 우승팀에 돈을 거는 일명 ‘맞대기’ 도박을 한 것이다.
이들 연예인이 도박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은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데다 정해진 스케줄만 소화하면 시간 관리가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이다. 또 얼굴이 알려져 마음 놓고 외출을 하거나 여가를 즐기기 힘든 만큼 비밀스러운 혼자만의 취미 생활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 연예인의 도박이 개인적인 일탈을 넘어 사회적 파급력이 큰 데도 대부분 너무나 쉽게 방송에 복귀한다는 점이다. 2017년 방송인 신정환이 7년 만에 복귀하면서 도박 사건에 연루됐던 연예인들이 모두 복귀했다. 양세형·붐·앤디·토니안·이수근·김용만·탁재훈 모두 1~3년의 자숙 기간을 거쳐 컴백했다. 더구나 이들은 복귀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서 도박을 개그 소재로 활용하는 등 범죄 행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대중에게 도박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신정환의 도박 전력이 ‘칩사마’ 같은 말로 희화화되기도 했다”며 “가벼운 개그 소재로 삼다 보니 신정환의 경각심이 무뎌져 다시 도박에 손을 댔다는 지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방송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에 매달리느라 출연자들의 도덕적·윤리적·인성적인 부분을 간과했다”며 “연예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해 제작진과 방송사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