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3년 4월2일 오후2시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 연병장. 해사 37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이 최신 함정의 존재를 밝혔다. “해군의 숙원이자 현대 무기체계의 정수인 신예 함정을 진수시킴으로써 우리 국민의 우수성과 자주국방 역량을 내외에 과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오후9시 시침이 울리자마자 ‘대통령 각하는…’으로 시작하는 대통령 동정, 이른바 ‘땡전 뉴스’부터 보도하던 시절, 모든 매체가 ‘신예 함정’을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어느 매체도 신예 함정이 무엇인지는 보도하지 않았다. 군사 기밀로 묶었기 때문이다.
신예 함정의 정체는 돌고래급 잠수정. 코리아타코마 마산조선소에서 이날 오전 진수식을 치른 최초의 국산 잠수정이었다. 건조 자체가 비밀이어서 진수식도 실내 조립장에서 열렸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국산 지대지 미사일 등에 대해서는 불신이 컸던 전 대통령도 잠수정에는 큰 관심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막상 지원은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연구 인력이 모자랐다. 잠수함이 아니라 수상함정을 전공한 2년 차 연구원 10여명이 주축. 해군과 ADD는 건조비 부담 여부를 놓고 신경전을 펼쳤다.
군이 잠수함 확보에 나선 것은 북한의 위협 때문. 소련과 중공에서 W급과 R급 잠수함을 대거 들여오고 해마다 1~2척씩 자체 건조하자 대응책 마련을 서둘렀다. 애초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제 U-106 잠수함을 이스라엘에 맞도록 영국 비커스사가 건조한 ‘갈(GAL)급’ 5척을 3억1,000만달러에 구입할 생각이었으나 예산 부족에 따라 잠수정 독자 건조로 방향을 틀었다. 연구 도중 박 대통령 시해 직후에 사업이 잠시 흔들렸으나 심문택 ADD 소장이 79억600만원의 건조비용을 전결로 처리하며 사업을 이어나갔다.
8년여간의 노력 끝에 진수된 돌고래급 잠수정은 170톤이라는 한계에도 2016년 완전히 퇴역할 때까지 해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잠수함 수출, 3,000톤급 중형 잠수함 독자 설계와 건조를 넘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확보하려는 출발점이 바로 돌고래급이다. ‘국산 잠수함’에 스며 있는 젊은 장교들과 엔지니어들의 열정과 헌신의 유전 인자가 한국 해군에 이어지기를 바란다. 잠수함은 치명적이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에서 잠수함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 “전쟁 기간 중 나를 두렵게 한 것은 오직 유보트에 의한 공포였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