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정부가 확정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개선안의 핵심은 비수도권 지역 예타 통과 문턱을 대폭 낮춰준 것이다. 비수도권 예타 평가 때 번번이 발목을 잡았던 경제성 비중은 낮추면서 예타 통과에 유리한 지역균형 비중은 키우는 방식을 통해서다. 그간 제기돼 온 “비수도권 낙후지역은 경제성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국책사업에 대해 엄격한 경제성 분석을 통해 재정 누수를 막아야 할 예타 제도의 취지가 상당 부분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숙원 사업 예타 통과 길을 터준 만큼 사실상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제도개편이라는 비판도 많다.
예타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사업 중 나랏돈이 3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사회간접자본(SOC)·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해 타당성을 검증하는 절차다. 지난 1999년 도입됐다. 이번 제도 개편은 20년 만의 첫 대대적 손질이다. 현행 예타 제도는 사업성 평가 때 경제성(35~50%)·정책성(25~40%)·균형발전(25~35%) 항목으로 비중을 구분해 왔다. 개편된 제도는 평가 대상 사업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구분했다. 그러면서 수도권은 지역균형 항목을 아예 없앴다. 대신 경제성 비중을 60~70%로 크게 늘렸고 정책성 비중은 30~40%로 조정했다.
반면 비수도권은 경제성 비중을 30~45%로, 5%포인트 낮추면서 지역균형 비중은 30~40%로 높였다. 이승철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은 “비수도권 사업의 균형발전 요인을 높게 평가하겠다는 점에서 예타 통과율이 현재의 65%보다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수도권이라 하더라도 도서·접경지역이나 읍·면으로만 이뤄진 농산어촌 지역은 비수도권 기준이 적용된다. 경기도 김포·동두천·양주·연천·파주·포천시, 가평·양평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책성 평가 항목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일자리 효과, 생활여건 평가를 새로 만들었다. 재원 조달 위험성도 추가돼 주민들이 광역교통개선분담금을 내 재원이 이미 상당액 확보된 제2경인선(GTX-B 노선)과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선 사업이 예타 통과에 유리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GTX-B 노선을 두고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연내 예타를 마무리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독점 수행하던 평가 기능도 국책 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나눠서 하도록 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초기에는 복지 사업 예타를 전담하고, 추후 SOC와 건축 등으로 분야가 확대된다. R&D 사업에 대한 조사는 기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그대로 수행한다. 평균 1년 7개월(2018년 기준) 걸리던 조사 기간도 1년 이내로 단축한다. 복지 분야 예타도 정책성, 경제성 평가를 경제·사회환경 분석, 사업설계의 적정성 분석, 비용 효과성 분석으로 바꾸기로 했다.
정부가 예타 제도를 대폭 손질했지만, 개편된 제도가 지역 숙원사업 추진 민원 창구로 악용될 소지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KDI와 조세재정연구원의 경제성 분석을 바탕으로 종합평가를 하게 될 분과위원회 구성원 10명 중 9명이 위촉된 민간 위원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정책적 입김에 사업성이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수도권 발전과 같은 지방 균형발전 문제는 예타 면제를 통한 재정 지원으로 할 게 아니라 지역 기반 산업을 키우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면서 “현 정부 들어 계속되는 재정 만능주의의 연속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