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불씨가 폭죽 터지듯 사방으로 튀는데 60 평생 살면서 이런 광경은 처음입니다.”
5일 강원 산불의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고성군 토성면에서 만난 오재범 일성콘도 설악사업본부장은 간밤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곳은 강원산불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전신주와 직선으로 500m가량 떨어진 최초 피해 지역 중 한 곳이다. 진화 작업이 한창인 이날 오전 찾은 콘도는 강풍에 지붕이 뜯겨나가고 주변 임야와 조경시설 곳곳이 잿더미였다. 전날 숙박객들이 긴급대피하면서 관련 시설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
전날 오후7시17분께 인근 전신주에서 불꽃이 튄다는 신고가 접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까지 불길이 번졌다. 당시 콘도에는 검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초등학생과 MT를 온 대학생 등 숙박객 250여명이 묵고 있던 상황이었다. 오 본부장은 “순식간에 건물 앞뒤로 불길이 옮겨붙으면서 시설이 포위됐고 하마터면 20톤짜리 액화석유가스(LPG) 탱크로리가 폭발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며 “일부 숙박객은 긴급대피하면서 미처 짐을 챙기지도 못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날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일성콘도·현대콘도 등 일대와 한화리조트를 거쳐 속초 시내로 번졌다. 이후 영랑호와 장사동 횟집거리를 거쳐 발화 2시간여 만에 해안가까지 이르렀다. 이 거리가 직선으로 7.2㎞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 불의 확산 속도는 사람의 뛰는 걸음과 비슷하게 확산된 것이다.
진화 당국은 이날 강원도 고성을 비롯한 속초 등지에 헬기 57대, 소방차 872대, 소방관·군인·공무원 등 1만7,700여명을 투입해 불길 잡기에 나섰다. 불은 대부분 진화됐으나 134채의 주택이 불에 무너져내리면서 이재민이 발생했다. 고성의 합동대피소 등에는 이재민 200여명이 누울 자리를 찾았다. 합동대피소가 차려진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에는 이재민 137명이 설치된 텐트에서 생활하게 됐으며 아야진초등학교에도 20여동의 텐트가 마련됐다. 고성·속초에 번진 주불이 비로소 100% 진화된 것은 이날 오전9시37분이다. 오후3시 들어서는 강원 영동 지역에 강풍주의보가 해제되면서 진화당국은 잔불도 70~85% 수준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건조한 날씨 속에 낙엽 속 깊이 숨은 잔불들까지 완전히 꺼지기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의 영향으로 고성을 제외한 전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산불 피해가 속출했다. 부산 해운대와 경기 파주·포천·연천·용인·남양주, 경남 의령·함안, 충남 아산, 경북 봉하·포항·의성, 강원 횡성·원주·고성·강릉, 충남 논산 등 하룻밤 사이 총 18곳에서 불이 났다. /고성·속초=최성욱·손구민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