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고성과 속초에 발생한 최악의 화재로 이재민 신세가 돼버린 주민들은 대피소에 머물며 착잡함과 허망함을 토로했다. 밤을 꼬박 새운 이들은 잠시나마 대피소에 누울 자리를 찾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가운데 전날 밤 강풍이 불어 화재가 커진 것이지만 현장에선 구급대원 및 소방대원들이 부족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5일 오후 강원 고성군 천진초등학교 체육관은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 137명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 거취가 제일 걱정이지만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로부터 보상 및 지원방안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인근 아야진초등학교에 설치된 20여동의 텐트까지 합치면 집을 잃은 이재민은 200여명으로 추산된다.
천진초 합동대피소에 자리를 잡은 A(39)씨는 이날 오전 이재민 신청을 했다. A씨는 전날 밤8시께 고성군 용촌의 집 바로 앞까지 불이 번지기 시작한 것을 보고 집을 포기해야 했다.
A씨는 “50m 앞까지 불이 붙기 시작했다”며 “휴대폰과 지갑 말곤 아무것도 챙겨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재민 B씨도 15년 동안 살았던 집이 단숨에 전소되는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B씨는 “불에 타 내려앉은 집을 보고 숨이 막혔다”며 “앞으로 얼마나 이곳에서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20여년 전 고성에 큰불이 났을 때 지자체에서 컨테이너를 제공해줬다”며 “그렇게라도 해야 좀 더 편하게 지낼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밤 화재 발생 당시 소방대원 및 구급대원이 부족해 더 큰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속초시에 마련된 여러 대피소 중 하나인 예은요양원에는 전날 밤12시께 73세 노인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불이 가까워진 다른 요양원에서 밤늦게 급히 예은요양원으로 대피하던 중 연기를 흡입하고 심리적 충격을 크게 받은 탓으로 알려졌다. 당시 지역에 구급인력이 부족한 것을 알았던 요양원 직원들은 그를 직접 병원으로 이송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구난영 예은요양원 시설장은 “평소 지병이 있는 분이었는데 충격이 크셨던 것 같다”며 “오전에 보호자가 찾아와 시신을 수습해 갔다”고 전했다. 이곳에는 이날 63명의 어르신들이 대피했으며 인근 요양원 4곳을 위한 쉼터가 됐다. 구 시설장은 “지난밤 어르신들과 요양원 직원들 100여명이 재빨리 들어와 직원들이 모두 밤을 새워가며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의사인 예은요양원 원장이 이송된 어르신들에 대해 간단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예은요양원을 피신처로 삼은 ㄱ요양원도 전날 밤 소방대원들의 도움을 받기 힘들었다. ㄱ요양원의 원장은 “수녀들과 선생님들이 불 앞에 서서 직접 물과 소화기를 뿌렸지만 불을 잡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결국 어르신들과 함께 전날 밤11시께 예은요양원에 도착했다. ㄱ요양원의 어르신들은 원래 머물던 건물이 현재 창문들이 깨지고 곳곳이 불에 탄 상태라 언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예은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의 점심식사를 돕고 있던 까리따스마테오의 한 직원은 “되도록 사흘 뒤에 복귀하려고 하는데 불에 탄 냄새가 아직도 진동하고 상황이 좋지 않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날 고성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현장대책본부에서 천진초 합동대피소를 방문해 현장을 살펴봤다. 김 장관은 기자와 만나 “임기 마지막날 갑자기 이렇게 큰일이 발생해 안타깝다”며 “이재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소방대원 및 구급대원이 부족해 현장 피해가 늘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그는 “각 지역 소방대원들이 재빨리 뛰어 나와 대처했다”며 “워낙 전날 화재가 무섭고 빠른 속도로 진행돼 잘잘못을 가리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속초·고성=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