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동선을 벗어나 ‘카풀’ 영업을 한 운전자에게 행정당국이 운행정지 가중 처분을 내린 건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카풀 서비스가 “세계 경제의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며 이에 대해 행정당국이 명확한 운영기준이 세워야 한다고 일침했다. 이는 앞서 ‘운수사업의 질서’를 앞세웠던 것과 상당히 달라 주목된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운전자 A씨는 2017년 4월 카풀 앱에 가입한 뒤 총 98차례 운행을 하고 160만원을 받았다 관할 구청은 A씨가 출퇴근 동선이 아닌데도 자가용 유상운송을 했다며 그해 11월 말 90일 운행정지 처분을 내렸다. 여객자동차법에 따르면 ‘출퇴근 때 함께 타는 경우’ 등 예외적일 때를 제외하고는 자가용 유상운송은 금지된다. 관할 지자체는 이 조항을 어긴 사람에게 6개월 이내에서 자동차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
A씨는 운행정지 기간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효력을 일단 중단해달라고 신청했다. 1심은 A씨의 신청대로 집행 정지 결정은 내렸지만 이듬해 7월 초 본안 소송에서 그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가 패소하자 구청은 그때부터 다시 90일 운행정지 처분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5부는 A씨가 출퇴근 동선 이외의 곳에서 카풀 영업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며 운행정지 처분 사유는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 조항을 해석하면 운행정지 처분은 ‘재량 행위’이지, 반드시 처분을 내리라는 규정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최초 처분 기간 90일 중 일부가 이미 지난 상태에서 구청이 같은 사유로 같은 기간의 운행정지 처분을 명한 건 가중 처분을 내린 셈이라며 “구청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어 취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A씨의 운행 시간이 택시를 잡기 어려운 퇴근 시간대나 심야 시간대이고, 운행 경로 중 일부는 출퇴근 동선과 겹치는 점도 참작 사유로 봤다. 그러면서 “승차 공유 서비스를 통한 공유경제의 확산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세계 각국 경제의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며 “이를 통한 자원 절약, 배기가스 감소, 이용자의 선택권 확대는 공익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카풀 사업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내놓지 못하는 현실도 꼬집었다. 재판부는 “신사업의 도입 과정에서는 행정 당국에 의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운영기준의 설정, 기존 사업자와의 적극적인 이해관계의 조정이 요구되는데, 이번 처분은 이런 조치가 지연되거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내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카풀 사업에 대한 이 같은 시각은 지난 2월 유사 사례에 대한 다른 재판부의 판단과 차별된다. 앞서 서울고법 행정4부는 운행정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운전자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자가용을 사용한 유상운송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면 택시업계의 영업 범위를 침범하는 등 운수사업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고, 교통사고와 범죄 발생의 위험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며 “제재 처분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의 보호 필요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