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저녁 발생한 고성·속초 산불이 전신주 개폐기의 불꽃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산업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장을 예측하고 곧바로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이 올해 말께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건전성 예측 및 관리 학회 수석부회장인 윤병동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10일 “외부 물질이 강한 바람을 타고 전선에 부딪혀 수천A(암페어)의 전류가 방전되면 변전소 차단기가 수십ms(100분의1초) 내에 차단하는 기술을 연말께 개발해 내년에 한전에서 검증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신주 개폐기에서 고장이 발생할 경우 수백m~수㎞ 인근의 변전소 내 차단기가 바로 감지해 순식간에 전력공급을 차단하면 산불 우려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설령 불꽃이 한두 번 튄 상태라도 곧바로 전력이 끊기면 대형 산불로 번지지 않게 된다.
현재는 검침원이 휴대용 초음파센서기를 가지고 전봇대마다 조사하고 다니는데 제한된 인력으로 조사에 한계가 많다. 육안점검으로는 결코 개폐기 고장을 막을 수 없다. 실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 결과 한전이 고성·속초 산불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척산간 158호 개폐기를 육안검사한 지 1시간20분 만에 불꽃이 튀며 초대형 산불로 번졌다. 보다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광학 카메라 검사를 하면 고장 예방에 도움이 되지만 30분 정도씩만 검사한다고 쳐도 역시 인건비가 많이 들어 전수조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번에 불꽃이 튄 개폐기도 2017년 11월 이후 광학 카메라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한전의 변전소는 765개, 전력 지사는 567개, 전국 본부는 15개, 차단기는 3만3,900개이다.
문제는 변전소에서 개폐기의 고장징후를 예측할 때 코일 저항값이나 전류 곡선의 형태를 봐 개방 시간이 정격치 내로 들어오는지 여부에 따라 정상 또는 불량을 판정하는데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개폐기 고장시 차단기 내 기계메커니즘 불량, 코일 저항 불량, 공기압력 부족 등으로 변전소 차단기의 동작이 지연되면서 자동 차단 효과도 거의 없다.
특히 아직까지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아 변전소 차단기 신호를 분석하는 기술이 부족하고 변전소에서 온라인으로 개폐기를 감시할 수 있는 계측 소프트웨어 역량(온라인감시시스템)도 부족해 수작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코일의 곡선 값이 변화할 때 변전소 차단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판단하는 기술은 국내외에서 논문으로 많이 나와 있지만 상용화된 기술 수준은 아직은 낮다. 윤 교수는 “변전소 차단기에 UHF(극초단파) PD(부분방전)를 활용한 온라인 감시시스템이 많이 도입되지 않아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다. 고장 사전징후 분석 기술이 낮다”며 “내년쯤 산업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고장징후 진단·예측 기술을 상용화하면 사고를 현저히 줄이거나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