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EU, ILO핵심협약 비준 강경 왜] "FTA 8년 됐는데 韓비준 소홀" 경고...日 등과 협상 카드로도

"협약 지지부진 땐 韓평판 손상"

다른 국가에 본보기 사례 활용

노동기본권 강화 공약 줄줄이

내달 유럽의회 선거 의식도




우리나라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두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이 강하게 경고하고 제재 가능성마저 거론하는 등 EU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협약의 비준 관련 조항이 있기 때문이지만 그 배경에는 체결 후 8년이 흐르도록 비준이 안 된 상황과 선거를 앞둔 EU 의회의 강경여론 그리고 일본 등 다른 국가에도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18일 정부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EU집행위원회는 올 상반기 중으로 ILO 핵심협약의 미비준 상태와 관련 진행 중인 분쟁해결 절차를 전문가 패널로 회부할지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EU FTA 제13조 4항 ‘다자간 노동 기준과 협정’을 보면 ‘ILO 핵심협약 및 주요 협약들을 비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ILO 핵심협약 중 4개를 비준하지 않았기에 FTA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지난주 방한한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집행위원회 통상담당 집행위원과 면담했던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내 언론사 고용노동 담당 부장 초청 정책간담회에서 “우리가 상대하는 EU 집행위원회는 행정부 격인데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EU 의회로부터 굉장히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며 “그렇게 쉬운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앞서 말름스트룀 집행위원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조속히 행동해야 할 상황”이라며 “협약이 비준되지 않으면 한국의 평판이 손상을 입을 것”이라 경고했다.


EU가 적극 나서게 된 결정적인 부분은 FTA 체결 후 흘러간 8년의 세월이다. 한-EU FTA를 지난 2011년 체결했는데 EU 측은 한국이 그 이후 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실질적 진전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8년간이나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면 EU에서 결과적으로 협정문 조항 위반이 아니냐고 문제제기할 수 있다고 우리 정부측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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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근본적 배경은 EU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미국 등과 달리 노동기본권에 보이는 전향적 태도다. 신인수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는 “유럽 국가들이 노동 관련 규범의 수준이 높다 보니 소비자도 상품을 살 때 적절한 환경기준과 노동기준을 준수했는지 고려하고 있다”며 “최근 진행 중인 FTA 협상은 노조의 의무수준을 강화하고 무역상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일반분쟁해결 절차까지 연계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EU의 의회격인 유럽의회가 더 강경하다. 다음 달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상당수 후보자들이 이 문제와 관련된 공약을 내걸고 있기 때문에 선거 후 EU가 바로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EU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와도 FTA를 맺을 때 노동기본권 관련 조항을 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분쟁해결 절차에서 무역 관련 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만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U 자체적으로도 스리랑카, 라트비아 등에 노동 규정 위반을 이유로 제재를 한 적이 있다. 이런 사례를 볼 때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는다 해서 이들 국가와 같은 수준의 제재를 당하지는 않겠지만 현지 수출대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EU는 여러 경로로 한국의 노동 관련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기에 통상교섭에서 하나의 수단으로 쓸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하다 봐야 할 것”이라며 “이번에 전문가 패널에 회부되지 않는다 해도 두고두고 한국을 괴롭힐 이슈가 될 수 잇다”고 전망했다.

이런 맥락에서 EU가 이 사안을 다른 국가와의 협상에서도 쓰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FTA 내 노동문제 관련 국내 대표 전문가로 꼽히는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는 “일본도 EU와의 FTA에 ILO 노동기본권 관련 조항에 한국과 동일한 언급이 있다”며 “EU가 한국과 ILO 협약 관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같은 내용으로 FTA를 맺은 다른 국가에도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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