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흔히 운율(rhyme)을 따른다”고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확산됐던 반미·민족공조 기운이 10여년이 지난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재연되고 있어 기시감을 주는데 다만 그 방식이 정교해졌다.
반미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05년 10월 친북·반미 단체들은 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려 시도했다. “통일을 방해한 원수(怨讐)”라는 주장이었는데 대한민국을 김일성의 침략에서 구원한 명망 있는 지휘관을 그렇게 정반대로 볼 수 있다는 관점이 놀랍다. 이에 데니스 핼핀 미 하원 전문위원은 노 정부에 너무 ‘형제·민족’ 개념으로 북한을 바라보지 말라며 인류 최초의 살인이 카인과 아벨로 형제지간에 발생했음을 상기시켰다. 한미동맹과 민족공조 간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보다 더 간단명료한 시사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2월 말 하노이 북미 회담 이후 궁지에 몰린 김정은 정권이 어불성설의 ‘김일성민족’ 개념에 기초한 ‘우리민족끼리’를 앞세워 문재인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중단하고 ‘민족의 일원으로서 당사자’가 되라고 충고했다. 노동신문도 16일 민족공조가 ‘겨레의 지향이며 시대의 요구’라고 선동했다. 이미 문 정부는 민족자주를 핵심 주제로 하는 4·27 판문점선언에 서명한 바 있다.
안보 차원에서도 문 정부는 이른바 ‘적대행위 중지’라는 구실하에 무장해제 수준으로 비판받는 9·19 남북군사합의에 서명했다. 국민들의 안보 우려가 증폭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70년 가까이 “한미 동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독자적인 전작권을 갖지 못했다”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했다. 이는 북한의 반미·자주 선동에 정면 대응하지 못한 것이고 그만큼 우리 안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한미의 현 전시작전권 체제가 양국 국군통수권자의 동의에 입각해서만 가동될 수 있기에 결코 군사주권 침해가 아니며 오히려 한반도 유사시 미국과의 단일지휘 합동작전를 보장해 우리 안보를 확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팩트다. 그러므로 전작권 전환은―비록 ‘미래사령부’ 체제로 새롭게 단장한다 해도―사실상 한미연합사를 불능화해 동맹을 와해시킬 위험한 선택이다. 노 정부 시절 시작된 전작권 전환 기도가 또 반복되고 있으니 국제관계와 국가안보에 대한 오도된 신념과 시각이 얼마나 지속적이며 유해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자유민주·인권을 모토로 하는 한미 동맹이 대한민국 안보와 번영을 뒷받침해왔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의 주체공산주의·세습독재와 양립·공존할 수 없으며 가치가 합일하지 않는 형제·민족 인식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현 정부 인사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민족자주 공조는 반(反)인륜적이고 반(反)국가적인 폭력집단과의 야합을 뜻하는 것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의 조지프 나이 교수는 “주한미군의 존재가 산소와 같으니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나 일단 없어지면 존립을 위해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반도 국제관계의 지정학적 특성상 선의의 강대국인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 안보에 필수불가결하다.
비핵화 협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를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며 원칙 있는 대응을 해줘서 천만다행이다. 최소한 비핵화를 향한 전략적 결단의 ‘진정한 징후’라도 있어야 한다는 존 볼턴 백악관 보좌관의 통찰은 시의적절하다. 문 정부는 북한정권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오도된 구호로 상황을 호도할 것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를 분명한 전략 목표로 설정해 현실적 방략을 찾아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