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증시 간 탈동조화(decoupling·디커플링)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양국 증시는 지난해 ‘검은 10월’로 불리는 폭락장을 겪은 후 올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달 들어 상승률의 격차가 커지는 모습이다. 미국은 나스닥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미국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상승 랠리가 가속화되는 추세인 데 반해 국내 증시는 최근 조정 국면에 접어드는 양상이다.
24일 코스피 지수는 19.48포인트(0.88%) 하락한 2,201.03으로 장을 마쳤다. 개인이 올 들어 가장 많은 4,000억원대 순매수를 기록했고 외국인이 장 막판 매수세로 돌아섰지만 기관의 4,200억원 순매도에 2,200선을 힘겹게 지켜내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증시는 23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상승했다.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1·4분기 실적 발표가 주가를 끌어올렸다. 나스닥과 S&P500 지수는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다우존스 산업지수도 지난해 기록한 최고점에 근접했다.
국내 증시는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미국 증시와 마찬가지로 상승세가 이어졌다. 코스피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6일까지 13거래일 연속 상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은 결과였으나 이후 외국인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약세 흐름으로 전환됐다.
한미 양국의 상반된 경제 성적표가 엇갈린 증시 흐름을 가져온 원인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지난달 말 장단기 금리가 잠시 역전되며 경기침체 공포가 확산되는가 싶었으나 이내 경기지표가 긍정적으로 나타나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최근 기업 실적이 뒷받침되자 위험자산 선호도도 높아졌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은 기업 이익 증가율이 지난해 대비 플러스됐고 이번 시즌 어닝서프라이즈 비율이 86%에 육박할 만큼 기업 이익 추정치가 최근 상향 추세라 심리적 호조에 힘입어 주가가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은 연초 대비로도 영업이익률 전망치가 30%나 하향 조정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국내 경제를 이끌던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며 상승 흐름에 발목을 잡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정보기술(IT) 기업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올해 22.38% 오르며 S&P500 지수(17.0%)와 다우 지수(14.3%)를 압도하는 것도 이 같은 결과다.
국내 경제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최근 국내 증시의 상승 흐름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풀이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이 중국 경제에 대한 익스포저(노출)가 커지면서 미국보다는 중국발 악재에 영향을 더 받는다”고 지적했다. 보호무역 강화로 미국발 낙수효과도 사라지면서 최근 국내에서는 유통·패션·식품 등 내수주가 증시를 받치고 있다.
기업 실적 악화를 비롯한 악화된 경제지표에 외부 요인까지 더해 국내 증시가 당분간 조정을 받을 수는 있지만 흐름이 길게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길수 키움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은 “미중 무역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될 경우 수출부진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며 국내 수출 감소폭이 축소되고 하반기에 개선될 수 있음을 예상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실적 시즌을 딛고 국내 IT·자동차 등의 흐름에 좋아지면 긍정적인 기대가 살아날 것”이라고 밝혔다.
/김광수·박경훈기자 br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