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 경리단길 청년 창업자 어디로 갔나

맹준호 성장기업부 차장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말은 원래 도심의 슬럼을 재개발해 최고급 주택가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적으로 명사 ‘gentry’는 ‘상류계급’을 말하고 동사 ‘gentrify’는 ‘고급화하다’ 또는 ‘고급주택가로 만든다’는 뜻이다.

요즘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이 ‘낙후된 구도심이 다시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올라 상인들이 쫓겨나는 현상’으로 더 많이 쓰인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게 된 것은 ‘상권 내몰림’ 현상을 이 용어로 표현하면서부터다.

최근 서울 경리단길이 몰락했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는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의 사업자가 쫓겨나고 새 사업자가 들어오는 젠트리피케이션과는 또 다른 현상이다. 기존 사업자는 포기하고 떠나는데 그 자리를 채우는 상인은 없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경리단길이 포함된 이태원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1.6%로 서울에서 가장 높다.


원래 경리단길은 다른 동네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한 곳이 아니었다. 낙후된 이곳을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만든 것은 젊은 자영업자들의 ‘소프트파워’였다. 실력과 열정을 가진 젊은 사업자들이 임대료가 비싼 기존 상권을 피해 경리단길에 들어와 작지만 특색 있는 점포들을 열면서 거리를 명소로 만들었다. ‘망리단길’처럼 이후 새로 뜬 상권은 ‘○리단길’로 불릴 정도로 낙후지역 부흥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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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경리단길이 무너진 것은 비단 임대료 상승만이 원인은 아닐 것이다. 자영업자가 한계를 돌파할 수 없는 사회구조와 오랜 불경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한국은 서구에 비해 자영업의 비중이 높고 비슷한 사업장끼리 과당경쟁을 하는 구조다. 부진한 자영업자에게는 퇴로를 열어주고 젊은 감각의 새 사업자에게는 진입로를 확대해주는 것만이 이 문제를 푸는 해법이다. 경리단길은 이런 선순환 세대교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모범사례였는데 정점이었던 지난 2015년 이후 4년 만에 무너졌다고 하니 씁쓸할 따름이다.

경리단길을 떠난 청년 창업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이에 앞서 가로수길에서 퇴출된 젊은이들은 어디에 있나. 청년 자영업자의 창업과 재도전을 돕는 것은 청년 일자리 문제와 자영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next@sedaily.com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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