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와(令和)’ 시대를 열며 취임한 나루히토 일왕이 아베 신조 총리의 우경화에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보수파의 요구를 수용해 지난 3월 29일 당시 왕세자 신분이던 나루히토 일왕에게 6개의 연호 후보를 사전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는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아베 총리가 나루히토에게 6개 후보안을 사전 설명한 것은 보수단체인 ‘일본회의’ 등 보수파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배려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일본 정부가 새 연호를 공개하기로 하자 보수파는 새 일왕이 이를 공포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아베 총리는 에토 세이이치 총리 보좌관 등 보수 계열 의원들과 논의 끝에 왕세자에게 연호 후보안을 사전 설명하기로 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아베 정부가 지난달 1일 레이와를 새 연호로 결정할 때부터 연호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본 정부는 레이와에 사용된 한자 ‘和’(화목할 화)에 주목해 연호가 ‘아름다운 조화’를 의미한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우경화 속도를 높이는 아베 정권의 의도가 내포됐다는 것이다. ‘레이(令)’가 명령을 뜻하는 한자어이며 ‘와(和)’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던 ‘쇼와(昭和·1926∼1989)’ 시대의 ‘와’와 겹치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아베 총리의 최대 과제인 개헌에 레이와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3선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자위대 존재를 헌법에 명시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야욕을 내비쳐왔다. 그는 지난달 23일 개헌 추진 단체의 집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선에 섰다. 이 나라의 미래상을 정면으로 논의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헌법은 국가의 이상을 말하는 것”이라며 개헌을 레이와 시대의 사명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202년만 양위로 나루히토 일왕의 상징적 의미마저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나루히토 일왕의 아버지인 아키히토가 물러났지만 상왕 자리에 있는 만큼 여전히 존재감을 발휘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나루히토 일왕은 아키히토 상왕과 비교해 조용한 성격이어서 개헌 등과 관련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회의론마저 나오고 있다. 아사히는 “아키히토 상왕이 민간 행사 등에 나서는 방안이 궁내청에서 논의되고 있다”면서 “이중 권위(왕의 권위 분산)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일본 내에서 천황제 폐지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일왕 퇴위식이 있었던 전날 도쿄 JR신주쿠역 광장에는 150명이 모여 천황제 폐지를 촉구하는 ‘반(反)천황제 운동 연락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