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15분기 연속 적자의 늪에 빠져 있는 가운데 이달 중순 발표될 1·4분기 실적에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당기순손실이 예상되는 데다 직전 분기(2,000억원)와 손실 규모가 비슷하면 자본잠식률이 50%로 급증해 추가 지원이 불가피해서다.
1일 채권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대상선은 지난 15분기 연속 누적 적자로 자본잠식률이 34%에 달한다. 이미 지난해 3·4분기 완전자본 잠식 우려가 불거졌지만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지난해 10월 현대상선이 발행한 1조원 규모의 영구채를 인수해주면서 급한 불을 껐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는 각각 현대상선 지분 13.05%와 4.42%를 보유하고 있다.
1·4분기에도 현대상선이 직전 분기인 지난해 4·4분기와 비슷한 적자를 기록할 경우 자본잠식률은 50%에 육박할 수 있다. 업황이 나아지지 않고 이 같은 추세가 굳어지면 올해 말 관리종목 지정이라는 복병을 만날 수도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연말 관리종목 지정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현대상선은 영업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어 이대로라면 2·4분기께 자본잠식률이 50%를 넘어 자본확충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은 초대형 선박이 인도되는 오는 2020년 2·4분기 이전까지는 영업력을 확대할 뚜렷한 방안이 없어 적자가 계속 쌓이는 구조를 벗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실제 영업 실적과 관련이 깊은 컨테이너 운임지수(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 1월 948.6에서 3월 766.8로 19.17% 감소했다. 영업비용의 30%를 차지하는 연료비(싱가포르 벙커C유)도 같은 기간 배럴당 388.3달러에서 428.7달러로 10% 올랐다. 컨테이너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주 노선 운임이 회복 중인 것이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숫자는 낮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3조원을 지원한 채권단은 또다시 추가로 지원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내몰리게 생겼다. 산은은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현대상선에 2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지난해 10월에는 해양진흥공사와 공동으로 영구채 인수에 1조원을 지원했다. 특히 현대상선의 영업력 강화를 위해 발주한 초대형 선박 20척의 선박금융에 대해서도 2023년까지 약 3조원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 난감한 것은 현대상선 사장을 교체해놓고도 실적 회복은 안 되고 추가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채권단은 지난해 자본확충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한 만큼 추가 자본확충을 논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채권단의 추가 자본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현대상선에는 고강도 자구노력을 압박하고 있지만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이 현대상선을 살리겠다는 신호로 해석되면서 조직 내 긴장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고가 용선료와 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비 부담이 지속돼 실적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컨테이너 운임도 글로벌 대형 선사들이 ‘치킨게임’을 벌이는 상황이어서 단기간 내 회복이 어려워 채권단의 추가 지원 없이는 현대상선이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