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여행을 시도 때도 없이 갑니다. 여름과 겨울로 치우쳐 있던 여행이 주5일 근무제, 주 52시간 근무, 워라밸 등의 영향으로 앞뒤 3~4일 붙여 훌쩍 떠나는 여행객들이 증가하면서 비수기와 성수기의 개념도 없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공항에 가면 혼자 여행을 떠나는 남성들도 종종 발견합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이 부쩍 늘었습니다. 편안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린넨 재킷과 발목이 보이는 치노 팬츠에 파나마햇을 쓰고 가죽 샌들을 신고 등 뒤로 바디백을 메고 있는 그들의 과감한 패션을 보면서 저 여행 캐리어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참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멋남 끝판왕의 여행 캐리어 속을 들여다 보는 ‘여행’을 떠나 볼까요.
◇쿨가이가 끄는 신상 캐리어=일단 제일 먼저 밖으로 드러나는 캐리어부터 중요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브랜드, 디자인, 컬러를 선호하는 이들은 가방부터 선택의 고민을 시작하니까요. LVMH 계열의 리모아에 질린 남성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디자인과 내구성을 간직한 또 다른 럭셔리 캐리어가 눈에 띱니다. 1946년부터 밀라노에서 시작한 FPM(Fabbrica Palletterie Milano)이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얼핏 보면 리모아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디자인이 좀 더 클래식하고 실버톤과 잘 어울리는 가죽 손잡이가 레트로 트렌드와 잘 어울리네요.
실제 여행을 하면서 캐리어를 계속 끌고 다닐 수는 노릇. 센스있는 남성은 또 다른 세컨드 백을 챙깁니다. 이동 중에도 스마트폰을 놓아서는 안되는 남성 고객의 손을 자유롭게 만드는 한편 전자담배, 휴대용 충전기, 여권, 지갑, 선크림 등을 담아 뒤로 ‘메는’ 형태의 바디백은 필수죠.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멘즈라이브러리에서는 ‘오로비앙코 바디백’이 지난 한 해 동안 남성 고객이 30%나 늘었답니다. 시그니쳐 색상인 네이비 ‘쟈코미오’는 특히 30대 직장인 남성 고객의 찜을 많이 당했습니다.
비즈니스 여행을 가는 멋남들은 수트케이스도 챙기더군요(여성들 보다 더 합니다!). 출장 겸 여행을 갈 때 아끼는 수트를 구겨지지 않게 보관해주는 세련된 수트케이스 ‘펠리시(Felisi)’는 나일론과 가죽을 혼합한 디자인과 소재로 수트케이스 뿐 아니라 대용량 여행 가방으로도 멋스러움을 유지해줍니다. 요즘 빅 사이즈 가방이 유행인데 꼭 수트만 담지 않더라도 국내 짧은 여행을 할 때는 여행 가방으로도 멋져 보입니다.
◇근사한 레더 케이스에 담긴 그것은…콘돔·위스키·시가·골프공=용도를 갸우뚱할 가죽 케이스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꼼꼼하고 정리정돈 잘하는 남성을 겨냥해 담배케이스, 시가 케이스, 위스키 케이스 뿐만 아니라 콘돔 케이스까지 나와 있군요. 여행을 다니는 남성의 남성미를 한껏 보여주는 다양한 소품은 ‘포레르빠쥬’라는 300년 된 프랑스 브랜드로 주인장의 디테일함과 섬세함이 잔뜩 묻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얼핏 보면 ‘고야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고야드보다 좀 귀엽고 앙증맞습니다. 포레르빠쥬는 다른 명품들 보다 100년 앞서 탄생했으니 고야드가 포레르빠쥬의 디자인을 곁눈질했다는 사실은 명품족들 사이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죠. 가죽에 갑옷 비늘을 연상시키는 ‘에카이유’라는 패턴이 있는데 포레르빠쥬가 1717년 프랑스 황실 및 귀족들에게 총과 갑옷, 검 같은 최고급 무기와 가죽 케이스를 납품하는 공방에서 시작한 것을 시사하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입니다.
국내 유명 악어가죽 브랜드 ‘바바로사’도 쿨가이의 여행 캐리어에서 종종 등장하는 소품입니다. 소재로 존재감을 보여주는 여권지갑과 핸드폰 케이스, 담배케이스는 ‘감성 만랩’의 남성임을 그저 소품 하나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홍승표 롯데백화점의 남성편집숍 다비드 컬렉션 매니저는 “에틴저, 바바로사, 히로안 등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의 가죽 소품을 찾는 고감도의 남성들이 늘고 있다”며 “요즘 젊은 층은 유명 브랜드 보다는 개성과 스타일이 강하고 퀄러티가 높은 제품을 선호한다”고 전합니다.
골프 여행을 떠나는 남성의 캐리어에서는 유니크한 아이템인 ‘아서앤그레이스’의 골프공 케이스도 발견됩니다. 30년 이상 경력의 장인들이 만든다는 이 브랜드는 남성 고객이 원하는 고품질의 가죽으로 카드지갑부터 골프공과 골프티를 담는 케이스, 네임택까지 주문제작해 줍니다. 요즘에는 여권을 그대로 들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권 지갑이 빠르게 일상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저는 여권 지갑을 2011년부터 사용했는데요. 당시만 해도 거추장스럽고 무게감이 나가는데다 1년 중 여행을 얼마나 다닌다고 여권 지갑을 꺼낼 일이 있냐며 주변의 코웃음을 샀었죠. 그러나 여행 횟수가 많아지고 여권 지갑도 패션이 되면서 이것 하나쯤은 소유하려는 남성들이 많습니다. 고급스러운 가죽 소재 자체로 멋스러움을 자아내는 여권 지갑 하나가 공항에서부터 여행의 품위를 배가시킨다면 하나쯤은 마련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속옷, 면도기도, 치약도 필살기=요즘 젊은 친구들은 속옷 브랜드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합니다. 아재들이 알고 있는 브랜드가 랄프로렌 폴로, 캘빈클라인, 토미힐피거 등에 그치는 반면 속옷 하나를 사더라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소재, 디자인, 밴딩에 들어간 로고 등도 신경을 쓴다고 하네요. ‘032c’ ‘HOM’ 이 요즘 멋남의 캐리어에 자주 등장하는 대세 브랜드라는데요. 그들은 이를 ‘초필살기 언더웨어’로 부른답니다. HOM은 1967년 론칭한 남성 프랑스 언더웨어로 ‘스타일이 독특하고 독립적이고 별나지만 모던한 남성’을 위해 고안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고급 패션 언더웨어로 명성이 높죠. 럭셔리하면서도 패션성이 강한 디자인 때문으로 여행 좀 다닌다는 남성들 사이엔 유명하죠. 일 년에 두 번 발행되는 매우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패션을 지향하는 독일의 ‘매거진이 만든 옷’인 032c도 인싸들의 선망템입니다. 칸예 웨스트, 리한나, 지드래곤이 이 브랜드의 옷을 착용해 화제가 됐지요. 국내 유일하게 갤러리아명품관에 입점해 032c를 만나러 명품관에 간다는 젊은 남성들이 등장할 정도라고 합니다. 032c에 열광하는 젊은 커플은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커플 속옷부터 구입하는 추세라네요.
면도기는 편하고 가볍고 잘 깎이기만 하면 전부 인줄 알았습니다. 호텔에 가면 제공되는 면도기를 거부하는 그이는 역시 그루밍족. 젊은 그루밍족들은 남들이 쓰는 전기면도기를 거부하고 쉐이빙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아날로그 수제 면도기를 사용하기도 한답니다. 다비드컬렉션에서 발견한 ‘볼린웹’ 면도기는 레드, 블루, 오렌지, 옐로우, 영국국기 등 컬러 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욕실의 디자인 소품입니다. 쥐어보니 그립감이 너무 뛰어나 여성인 저도 하나 장만하고픈 생각이 들 정도군요. 습식면도기 럭셔리 끝판왕인 ‘레데커 뮬러(Muhle)’ 세트는 클래식함과 무게감이 매력입니다. 가죽 케이스 안에 살포시 안긴 면도기와 쉐이빙 크림의 거품 브러쉬 세트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고 싶은 욕구도 일으키는군요. 털끝 하나 남김없이 완벽하게 깎인다고 하는데 쉐이빙에 집중하면서 스트레스도 날려버릴 것 같습니다. 그 남자의 가방에서 언뜻 보이는 치약계의 샤넬 ‘루치펠로’만 봐도 그의 감성이 읽힙니다. 루치펠로가 요즘 젊은 층 사이에도 많이 알려지면서 좀 더 차별화된 모습을 연출하려는 남성들은 루치펠로의 프레티스지 라인인 ‘프로즌피루나 치약과 칫솔 세트’ 파우치로 승부합니다. 여기 칫솔은 이중 미세모로 잇몸에 자극이 없고 치의학적으로 권장되는 일자형 핸들이라 균형 잡힌 칫솔질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생활산업부장 yvett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