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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의 향기]황복사터 삼층석탑

국보 제37호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진제공=문화재청국보 제37호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진제공=문화재청



통일신라 신문왕이 죽자 그의 아들인 효소왕은 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탑을 세웠다. 692년에 조성한 것으로 전하는 국보 제37호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이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짜리 탑신을 세운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탑의 모습이다. 탑이 위로 올라갈수록 층층이 좁아지는 비율이 색다르다. 특히 꼭대기 지붕이 작고 상부 장식이 소박해 친근한 느낌을 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국보 제112호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이나 국보 제38호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등과 비교하면 같은 3층이지만 규모가 작은 편이다. 큰 삼층석탑들과 달리 탑신부도 여러개의 돌로 짜맞추는 대신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뤄져 있다. 지붕돌은 윗면이 평평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다. 1942년 착수된 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2층 지붕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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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유물 중 하나인 사리함 뚜껑 안쪽에 탑을 건립하게 된 경위와 발견된 유물의 성격이 기록돼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706년에 앞선 두 왕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했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지난 2016년부터 성림문화재연구원이 장기발굴을 시작해 절터에서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기단과 금동입불상 등 1,000여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쌍탑 목탑터가 발견돼 다보탑·석가탑이 나란한 불국사같은 쌍탑 가람배치의 통일신라 사찰 기본틀의 시원을 밝힐 실마리로 기대를 모은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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