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주도 기초연구비는 문재인 정부에서 두 배로 늘어나고 있어 긍정적이나 아직 젊은 연구자와 여성 과학자를 지원하는 게 부족하고 정부 연구개발(R&D) 기획·평가 시스템의 혁신도 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염한웅(53·사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최근 서울 광화문 KT빌딩에 있는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문재인 정부는 기초연구비 확대, 연구자 중심 R&D 체계 혁신, 소외 과학자 지원이라는 세 축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초연구비 확대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지만 청년과 여성 과학자에 대한 지원 확대,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R&D 기획·평가의 패러다임 전환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인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학기술 정책을 입안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대통령이 의장인 국가 과학기술 최고 자문·심의기구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우선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 등 기초연구비가 정권 초 1조1,000억원에서 올해 1조7,000억원까지 늘었고 오는 2022년까지 2조5,000억원으로 확대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저는 당초 기초연구비 자체를 임기 중 두 배로 늘리자고 주장했으나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사업을 갑절로 확대하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털어놓았다.
행정부담 감소 등 연구자 중심 R&D 행정 혁신책과 소외 연구층에 대한 지원 확대는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가 R&D 혁신책을 지금까지 시행령으로 진행하다 법에 담아 국회에 냈는데 통과가 안 돼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이어 “청년·여성 연구자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데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아 반성하고 있다. 올 하반기나 내년에는 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과학계 일부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과 중이온가속기 등의 예산을 줄이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IBS는 물론 중이온가속기도 10년 후 봤을 때는 좋은 사업이었다고 평가될 여지가 크다”고 전제한 뒤 양측을 구분해 설명했다. 그는 “IBS가 30여 사업단에서 예산을 각각 65억원씩 쓰는데 과거 창의연구사업에서 교수당 연 12억원씩 2년간 밀어줄 때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주 잘 된 사업으로 평가받는다”며 “해외 저명한 학자들도 IBS를 가리켜 ‘한국 정부가 기초과학에 투자하려는 의지가 확실히 있구나’라고 얘기한다”고 소개했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대선공약에서 과학계 일부가 밀어붙였던 중이온가속기의 경우 물리학계에서도 일부만 이용할 확률이 높다는 의견이 나온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당시에 컨센서스를 확보하지 못하고 추진했다는 점에서 지금도 대형 사업은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IBS 중이온가속기사업단은 총 1조5,000억원 가까이 들여 2021년 초전도가속 구간 빔 인출을 목표하고 있다.
그는 25개 과학기술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역할에 대해 “과거 1970~1980년대는 출연연이 산업 발전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는데, 지금은 정부 R&D 예산이 올해 20조5,000억원이나 민간 R&D 투자액은 65조원에 달한다. 출연연이 삼성전자 등 대기업을 이끌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출연연이 각자 잘할 수 있는 분야와 방향성을 찾아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7개 출연연을 대상으로 새로운 역할 정립에 나서고 있는데 3~4개 기관만 역할을 재정립해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출연연은 정부나 기업에서 연구과제를 따는 PBS 비중을 줄여달라고 하는데 과기정통부는 새로운 역할 정립에 따라 예산지원을 늘릴 계획”이라며 “10~20년간 로드맵을 만들고 긴 호흡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R&D 성과가 낮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바이로메드 등 신약 임상 3상을 진행하는 곳이 있을 정도로 성과도 나오고 있다”고 국민들께 협조를 구했다. 그는 이어 “빼어난 논문, 특허의 상용화, 미세먼지·감염병·지진 등 국민체감형 R&D라는 방향에 맞춰 양적으로 축적된 성과를 질적으로 도약시켜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특히 그는 R&D 투자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연 6만개가 훌쩍 넘는 정부 R&D 과제의 기획과 평가 과정에서 논문과 특허 위주의 정량적 평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앞으로 정성적 요소를 어떻게 도입할 수 있는지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대표적 정성평가 방법으로 꼽히는 동료평가(peer review)에 대해서는 “미국은 물론 중국·대만까지도 실시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우리나라에서는 각 분야 권위자를 뽑아 기획·평가를 맡기면 그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 문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