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허드슨 야드로 떠들썩하다. 일본이나 중국·싱가포르 등 아시아 경쟁국들도 도심 재개발에 뛰어들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만 뒤처지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미국과 우리는 덩치가 다르지만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자체가 매우 부럽다. 우리도 서울 용산이나 서울역·여의도 지역은 개발 여지가 무궁무진하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이런 좋은 개발 후보지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억누르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용산은 이제껏 손도 못 대고 있는 실정이다. 법에서 정해진 대로 한다면 충분히 개발 가능한 프로젝트다. 도시의 경쟁력,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차원에서 도시재생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도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도시재생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나.
△사실 도시재생의 범위는 굉장히 넓다. 현행법에서는 재개발·재건축은 물론이거니와 항만 개발까지 아우르고 있다. 사실상 모든 개발사업은 도시재생에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재생을 동네골목 정비나 벽화를 그리는 것 정도로 좁은 범위에서만 이해하고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제외된다고 보는데 잘못된 인식이다. 법으로는 폭넓게 잡아놓고 현실은 반대로 간다면 전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오도하는 것이다. 기껏 법으로 만들어놓았으면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 한마디로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이런 세간의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 잡는 게 도시재생학회의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사업은 지역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나.
△도시재생사업은 경제기반형·일반근린형·중심시가지형 등 면적과 지역 여건에 따라 다르다. 이 중 경제기반형은 마땅히 추진할 만한 곳이 거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심시가지형도 후보지가 갈수록 고갈되는 양상이다. 특히 경제기반형의 경우 지방을 다녀보면 해당 지역뿐 아니라 도시 전체의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도움이 될 만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규모가 작거나 일감이 부족한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의 지방 현실이 이렇구나 싶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전국을 일률적으로 할 수 없다 보니 이래저래 어려움이 크다.
-그래도 정부는 상반기에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로 22곳을 선정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는데.
△정부가 나름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하다. 중앙정부의 의지는 강한데 지자체에서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지역주민들은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활력을 되찾겠다며 적극적인 의욕을 보이지만 할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예산은 있는데 추진할 만한 곳이 줄어든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아무래도 초기에 착수한 곳에 비해 나중에 진행된 곳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도 섣불리 아무 곳이나 선정할 수 없고 지자체도 나중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정부에서는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부쩍 역점을 두고 있는데.
△지금도 지방에 가보면 커뮤니티센터나 도서관·문화공간 등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이런 것도 필요하다. 도시재생의 요체는 이를 버리자는 게 아니라 눈을 돌려 생산적인 사업도 함께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처럼 대기업이 적극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도쿄 롯폰기힐스만 해도 국유지를 민간에 매각해 오늘날의 성공사례를 일궈냈다. 아무래도 공공보다 민간이 셈법이 빠르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정부도 민간기업도 반성할 점이 많다고 본다.
-정부가 공공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니 민간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지적도 많다.
△처음에는 공공부문에서 개발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지만 결국 사업성 여부에 대한 판단능력이 앞서는 민간에서 주도적으로 맡아야 한다. 언제까지 공공부문이 떠맡을 수 있겠나. 일본은 방위청 별관의 국유지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지구계획을 마련하고 용적률도 적절히 맞춰 민간 컨소시엄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민간에 돌아갈 수익을 사전에 고려한 것이다. 우리는 민간이 돈을 벌게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정부 당국에 이런 얘기를 하면 특혜 시비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는 반응부터 앞선다. 비록 공감은 가지만 여론이 들고일어나면 정부로서는 대책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국유지 개발도 마찬가지다. 고밀도 개발을 추진하는 등 민간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과감히 길을 터줘야 한다. 서울 송현동의 대한항공 부지도 개발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수난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다. 일본이 ‘고쿄(일왕 거처)’ 바로 옆의 부지에 대해 과감히 고도제한을 풀었던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도 도시 경쟁력을 갖추자면 이처럼 과감한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 서울만 해도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GM이 철수한 군산처럼 지역의 산업기반이 쇠퇴한 곳은 개발 여지가 크지 않나.
△경제기반사업의 취지야 좋은데 문제는 판을 벌여놓았다가 기업이 들어오지 않으면 후유증이 크다는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의 실패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요코하마의 경우 ‘미나토미라이21’이라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수요예측에 실패해 결국 빚더미를 떠안았다. 도시의 자족 기능을 살리면서 도쿄의 일부 수도 기능까지 가져오겠다는 야심 찬 구상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기업체들이 외면하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지역개발사업이란 그만큼 세심하고 치밀한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도쿄 지역은 도심개발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는데.
△일본이 일찍이 도심개발에 나선 것은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도쿄역 마루노우치 일대가 대표적인 개발 프로젝트다. 도쿄역 건너편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 일본 고쿄와 인접해 있어 고도제한이 불과 31m였다. 그러다 보니 개발이 거의 불가능했고 건물도 낡아 주거환경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과감한 규제 완화에 나서 용적률을 900%에서 1,200%로 늘려주는 등 개발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곳은 존치하는 대신 탄력적인 용적률 적용이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덕분에 용적률이 최대 1,700~1,800%까지 늘어났고 깐깐한 고도제한에 묶여 있던 지역이 환골탈태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일본에서도 초고층 개발 허용을 놓고 반발이 컸을 듯한데.
△일본에서 신처럼 떠받드는 일왕과 관련된 사안이다 보니 여론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고도제한까지 한꺼번에 풀어버렸으니 말이다. 우리 같으면 특혜라고 뒤집어질 일이다. 하지만 도심개발 과정에서 개발 주체의 애로사항을 당국에서 앞장서 해결해주는 과정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도쿄와 나고야·오사카 등 대도시를 하나의 생활경제권으로 묶는 초대형 국토종합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난리가 날 것이다. 일본은 또 한때 수도 기능의 지방이전을 추진하다가 전면 백지화시켰다. 일본 국토성 공무원을 만나 이유를 물어봤더니 한국은 세종시로 이전해 얼마나 좋아졌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묻더라.
-일본이 이렇게 도쿄를 중심으로 도심 살리기에 나선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은 수도 기능의 지방이전을 포함해 사실상 균형발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일본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싱가포르나 홍콩에 비해 글로벌 기업 유치전에서 밀려나고 성장률이 뒤처지면서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만 해도 제2, 제3의 상하이를 속속 만든다는데 가만히 있으면 글로벌 중심지로 성장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추가로 유치하기는커녕 기존 기업도 빠져나가는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도시 간의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도 그렇고 뉴욕의 허드슨 야드 사례를 지켜보면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이제는 그냥 있으면 있는 것도 다른 도시에 고스란히 뺏길 판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로부터 기업을 빼앗아 와야 하는데 그건 어렵다고 봐야 한다. 누가 오겠나. 일본 마루노우치 지구처럼 우리도 과감히 개발사업을 해야 한다. 다만 요코하마처럼 망하면 절대 안 되고 될 만한 곳은 전폭적으로 밀어줘 성공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기반형 도시재생도 힘을 얻는 법이다. 너무 작은 규모에 매달리거나 성공 가능성이 낮은 사업에 매달리면 안 될 일이다.
-전반적으로 재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역 형편에 따라 여건이 다른 것을 놓고 이래저래 말들이 많은데.
△도시재생학회에서 전국의 29개 소규모 도시정비사업을 대상으로 따져봤더니 개발이익 비례율이 마이너스인 곳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심지어 개발사업이 끝나면 1억~2억원의 빚더미를 떠안는 곳도 있을 정도였다. 사업성이 떨어질뿐더러 개발사업의 실현 가능성도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지방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소규모 지정사업일수록 더 어렵게 마련이다. 그래도 서울 지역은 재개발이 가능한 곳이 나오고 일반적인 경제기반형 개발은 충분히 가능한데 정책 자체가 가로막고 있으니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수익성이 뒷받침되고 될 만한 재개발이나 재건축사업은 적극적으로 허용해주면 좋을 듯하다.
-서울 지역의 경우 건축물 높이나 층수 제한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도 높다.
△일률적인 층수 제한은 문제가 많다. 법적으로도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에서 상당한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굳이 재건축 높이를 제한하려면 확실하게 법으로 적용하는 게 맞다고 본다. 서울시의 주장대로 성냥갑 아파트를 막겠다는 것도 생각해볼 사안이다. 층수나 높이를 과도하게 규제하다 보니 사업성을 맞추느라 궁여지책으로 닮은꼴 아파트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규제를 풀어주면 5층짜리도 만들고 길가에는 15층을 짓는 등 얼마든지 다양한 모양이 나온다. 용적률만 맞춰놓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민간에 과감히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앞으로 도시재생학회가 할 일도 많을 듯하다. 올해 구체적으로 잡고 있는 목표는 뭔가.
△정부가 가고자 하는 도시재생 방향에 도움을 주고 필요하다면 올바르게 안내하는 역할에 주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해외 성공사례를 국내에 많이 소개하고 바람직한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 정책을 전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도시재생의 바람직한 청사진과 비전을 만들기 위해 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과의 접점도 꾸준히 늘려나가겠다. / ssang@sedaily.com
He is…
1961년 강원 춘천 출생으로 한양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대에서 도시지역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위원과 경기도 도시재생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으며 국토교통부 민간임대주택통합심의위원회 위원, 해양수산부 중앙항만정책심의회 위원 등 자문 역할을 폭넓게 맡고 있다. 한국도시재생학회 창립멤버로 참여해 부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도시정책학회·한국도시계획가협회 부회장 등을 두루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