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트럼프 ‘美 우선주의’로 세계가 휘청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국익 앞세운 美 편협한 외교에

나라마다 반미·민족주의 확산

글로벌 협력 줄고 불안정성 커져

파리드 자카리아파리드 자카리아



(Trump‘s ’America First‘ philosophy has created a less stable world)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외교정책에 대체로 무관심한 듯 보인다.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에 들뜬 그는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떠들어대며 중재자 노릇을 하려고 들었다. 협상 타결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관심을 잃어버린 트럼프는 이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북한 외에도 그의 외교정책은 대체로 (부동산개발 업자들의 업무 처리 방식과 비슷한) ‘하청’ 외교였다. 중동 지역 외교정책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외주를 줬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건 지지한다.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중남미 좌익정권을 겨냥한 정책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플로리다) 등 호전적인 측근 인사들에게 일임했다. 중남미의 나머지 국가들을 향한 외교정책은 오직 이민이라는 렌즈로 결정된다. 이 부문의 주 하청업자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 정책고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외교정책의 한 가지 공통된 양상은 해외에서 민족주의라는 격렬한 반응을 유발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는 무역과 관련한 미국의 공격적인 요구를 비난하며 강력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 베이징 관영 TV 방송사는 최근 미국의 전술을 과거 중국을 예속시키기 위해 외국 열강들이 펼쳤던 외교전과 연결하는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특집방송에 등장한 앵커는 “5,000년의 비바람을 견뎌낸 중국이 무엇인들 이겨내지 못하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미국이) 무역전쟁을 원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대목은 중국의 중앙TV 뉴스 채널로 방영됐으며 온라인에서도 수백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은 현 정권의 부실한 경제 관리가 아니라 트럼프의 반이란 전략에 책임을 돌릴 수 있었기에 미국의 제재에 따른 경제난을 견뎌냈다. 워싱턴은 늘 그래 왔지만 이란의 경우에는 특히나 민족주의를 과소 평가했다.

이란의 외교적 움직임은 시아파의 이슬람 원리주의가 아니라 이슬람 공화국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다. 이란 왕정 시절 샤 치하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아르데시르 자헤디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이슬람 공화국의 외교정책을 강력히 옹호했다. 그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샤의 통치기에 시작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방식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민족주의와 반미감정을 유발한다. 지난 30년간 미국이 거둔 최대의 외교 성과는 멕시코를 반미 혁명국가에서 미국의 친밀한 파트너로 돌려놓은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인 지난 2015년 멕시코인의 66%가 미국에 호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2018년에 이르자 그 수치는 32%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49%에서 6%로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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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곳에서 이와 동일한 패턴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2015년 무려 76%에 달했던 캐나다인들의 미국 대통령 신뢰도는 2018년 25%로 주저앉았다. 프랑스는 더 심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83%까지 치솟았던 미국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최근 25개국에서 실시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오바마보다 트럼프에게 더 높은 신뢰감을 표시한 국가는 러시아와 이스라엘 단 두 곳뿐이었다.

지금 지구촌의 국가들은 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반미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의 이념을 수용한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간 헝가리에 ‘반(反)자유적인 민주국가’를 건설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한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민주적인 견제와 균형을 파괴했고 (헝가리에는 별로 없는) 이민자들을 악마로 만들었으며 반이슬람 수사를 입에 올렸다. 오바마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던 오르반은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에게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럼에도 오르반은 그동안 미국이 내놓은 제안을 연이어 거부했고 목적에 부합하기만 하면 중국·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2017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트럼프는 ‘국가들의 위대한 각성’을 외치며 애국심과 자기 이익을 대외정책의 지침으로 활용할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의 북극성은 국익이라는 편협한 개념에 대한 찬양이다. 그는 더욱 광범위한 국제적 이익이 존재한다는 사고를 거부함으로써 암묵적으로 협력과 상생의 해법이라는 아이디어를 폄하한다. 오르반은 단지 트럼프가 촉구한 바를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과 이란, 그 외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미국이 여전히 세계의 지도국인데다 트럼프의 스타일이 공격적이고 비외교적이기 때문에 가장 쉬운 해외의 반응은 대중의 분노와 불쾌한 역사적 기억을 부추기고 국가들을 득과 실이라는 사고의 틀에 묶어두는 민족주의와 반미주의로 표출됐다.

지금 세계는 불안정성이 커진 반면 국가 사이의 협력은 줄어들고 미국을 위한 기회의 창은 닫히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미국 제일주의라는 트럼프의 철학이 가져온 직접적이자 논리적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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