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가 내년부터 중고생 무상교복 사업을 추진한다. 금천구의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28.6%로 25개 자치구 중 15위에 불과해 구청 내부에서도 재정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인 구의회와 여론에 밀리는 모습이다. 재정이 열악한 금천구마저 현금복지 사업을 하게 되면 중구의 어르신공로수당과는 또 다른 파장이 일 수 있어 주변 자치구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21일 금천구에 따르면 구가 지난 10~18일 온라인과 오프라인 주민총회를 통해 무상교복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 ‘2020년 중고등학교 동시지원’이 46.5%(954표)로 1위를 차지했다. 사업 보류를 의미하는 ‘지원시기 조정’은 13%에 불과했다. 금천구 관계자는 “투표 결과로 무상교복 지원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무상교복 사업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작다. 애초의 사업추진 주체가 구청장이 아닌 구의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금천구의회는 백승권 민주당 금천구의회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복 지원 조례안’을 통과시켰지만 관련 예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천구의회의 10석 가운데 6석은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어 이번 주민 의견수렴 절차 후 예산 통과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16일 시흥5동 주민총회에서 “구의회와의 협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주민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내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서울시내 자치구들 중 하위권에 속하는 금천구의 재정상황이다. 금천구의 올해 예산 규모는 4,600억원으로 이 중 75%가 복지와 인건비 등 행정 운영에 쓰인다. 내년부터 중고교 신입생 1명당 30만원이 지급되면 금천구는 연 8억8,000만원의 예산을 추가로 고정 지출하게 된다.지난주 ‘무상교복’과 관련해 진행된 금천구 시흥5동 주민총회에서도 ‘구의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모(59)씨는 “구에서도 돈 쓸 데가 많지 않겠느냐”며 “모든 것을 정부에서 해주면 아이들이 교복의 소중함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교 동시지원에 투표했다는 김모(55)씨도 “구의 예산 상황을 알려줬으면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살림 생각을 전혀 못 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들은 “구에서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면 환영한다”고 답했다. 탁모(54)씨는 “다른 구도 무상으로 교복을 지급하는데 우리 구는 전혀 없다”고 했고 강모(47)씨도 “교복 부담이 생각보다 크다”며 “학부모의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도 무상교복은 좋은 정책”이라고 반겼다.
‘금천구가 무상교복 사업을 실시한다’는 소식이 돌면서 양천·구로구 등 주변 자치구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어르신공로수당으로 현금복지 논란의 발원지가 됐던 중구는 재정자립도가 서울 자치구 중 2위이기 때문에 그나마 ‘부자 동네라 할 수 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고 무상교복을 선제적으로 시작했던 중·마포·강동구의 재정자립도 역시 다른 구보다 높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금천구 관계자는 “우리 구가 경제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열악한 것은 맞지만 저소득층 주민들이 많아 예산이 적어도 복지정책을 하려는 의지가 있다”며 “다만 재정여건에 따른 괴리감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금천구는 서울시내 자치구들 가운데서도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서남권에 속해 실제 무상교복 정책을 시행할 경우 재정이 열악한 다른 자치구들 역시 주민들로부터 ‘왜 우리 구는 교복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느냐’는 민원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무상급식도 예산이 없어 올해 고교 3학년만 하는 상황”이라며 “교육청에서도 교복을 자율로 맡기는 상황에 시대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구로구 관계자도 “다른 자치구에서 무상교복을 하게 되면 우리 구도 안 할 수가 없다”며 부담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