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갑작스러운 현역 은퇴를 발표하고 마운드를 떠난 임창용이 당시 제기됐던 김기태 전 KIA 타이거즈 감독과의 불화설에 대해 입을 열었다.
22일 한 매체와 인터뷰를 가진 임창용은 “팀에서 방출된 뒤 다른 팀에서도 나를 받아들이기는 어렵겠구나 싶어 은퇴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먼저 방출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내가 그 상황에서 왜 풀어달라고 했겠나. 나는 아직 공을 던질 수 있고, 몸이 허락할 때까지 던지고 싶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방출 과정에 대해서도 부연했다. 그는 “(2018시즌이)끝나고 FA(자유계약선수)를 행사하지 않았다. 구단 측에서 나를 불렀는데 당연히 재계약인줄 알았다. 하지만 조계현 단장이 ‘우리와 인연이 다 된 것 같다. 현장과 협의해서 결정 난 상황이니 방출하겠다’고 말했다”면서 “순간 할 말이 없어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나왔고 이후 매우 화가 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불거진 ‘항명 사태’에 대해서도 심경을 고백했다. 당시 김기태 전 감독은 KT와의 경기 세이브 상황에서 마무리였던 임창용 대신 김윤동을 마운드에 올리면서 임창용과의 불화설이 나왔다.
이에 대해 임창용은 “당시 김기태 감독이 갑작스럽게 김윤동 선수를 올렸다”며 “미리 말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이 ‘어린 선수를 위해 뒤에서 희생해 줬으면 좋겠다’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더라도 화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김기태 감독의 자진사퇴가 자신의 방출과 관련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임창용은 “자신의 방출보다는 성적 부진 문제가 큰 것으로 보인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1976년생으로 올해 마흔 네살인 임창용은 지난 1995년 KIA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지난해까지 24년간 프로 무대에서 활약했다.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한 뒤 첫 해를 대부분 2군에서 보냈다. 1997년 풀 타임 마무리로 데뷔한 임창용을 14승 8패 26세이브를 기록하며 KIA 타이거즈로 팀 명칭이 바뀌기 전 마지막 우승에 힘을 보탰다. 당시 불펜과 마무리를 오가며 135이닝을 소화하면서 1993년 선동열의 125이닝을 뛰어넘어 ‘창용 불패’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KBO리그에서만 통산 760경기에서 130승 86패 258세이브 19홀드 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했다. 역대 최다승 7위, 세이브 2위로 개인 통산 100승과 200세이브를 함께 넘긴 선수는 전 LG트윈스 투수 김용수와 임창용 단 2명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