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2일 고(故) 노무현 대통령 10주기 참석차 방한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회동은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이 부회장이 이날 오후 늦게 부시 전 대통령의 숙소인 광화문 인근의 한 호텔을 찾는 장면이 목격되면서 알려졌다. 두 사람의 회동은 지난 2015년 부시 전 대통령이 ‘프레지던츠컵 대회’ 개막식 참석차 방한했을 때 환담한 후 약 4년 만이다. 약 30여 분간 이뤄진 이번 면담에서 이 부회장은 부시 전 대통령에게 최근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환경에서 기업의 역할 등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미국 시장에서 활발히 뛰고 있는 삼성의 행보 등에 대해서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가(家)와 삼성가의 인연은 부시 전 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였던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전자는 오스틴에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텍사스 오스틴 공장 준공식 즈음 부시 전 대통령과 몇 차례 만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다. 특히 1992년 2월에는 재임 중이던 조지 H.W.부시 대통령을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40분간 단독 면담하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15년 한국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기간 베어스베스트 청라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전인지(KB금융그룹) 등과 플레이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글로벌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특히 분식회계 논란으로 시끄러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등 그룹 안팎의 악재 속에서도 이 부회장이 조직의 중심을 다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항소심 집행유예 판결로 석방된 이후 지금까지 모두 여섯 차례 외국 정상급 인사와 만났다. 지난해 6월에는 인도 노이다의 스마트폰 공장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 올 2월에는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제를 만나 5세대(5G)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인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도 만나 의미가 더 컸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방문해 총리 공관에서 응우옌쑤언푹 총리와 면담하고 베트남에 대한 중장기 투자 방안을 점검했다. 얼마 전에는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중국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지 않기로 선언한 일본을 방문해 NTT도코모 등 통신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났다.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5G 공략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이 부회장과 외국 국빈의 만남 자체가 총수가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며 “삼성으로서는 이런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 여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 국가의 리더라면 삼성 오너를 만나 삼성을 상대로 구애 메시지를 던지고 싶을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