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이 1년 넘게 장기화하면서 유권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그의 재선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유권자들은 현 경제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를 흔드는 무역전쟁에 반감을 드러내 향후 트럼프 정부의 무역정책이 변화할지 주목된다. 정권에 대한 바닥 민심이 냉랭해지자 민주당은 ‘탄핵론’에 다시 불을 지폈고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민주당 지도부와의 인프라 투자 회동을 파행으로 몰며 이에 응수했다.
미 CN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퀴니피액대가 지난 16∼20일 유권자 1,0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오차범위 ±3.7%)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에 대한 찬성률이 39%에 그친 반면 ‘반대’는 53%에 달했다. CNBC는 무역전쟁으로 피해를 당한 농민 등이 늘어나며 대통령 지지율도 38%에 머물렀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7%로 집계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1%는 미국 경제상황이 ‘아주 좋다’거나 ‘좋다’고 답해 약 18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에는 별 기여를 하지 못한 셈이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등이 개인 재정상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36%)보다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44%)이 많아 무역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대통령 지지율을 깎아 먹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WP는 이번 조사에서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오하이오·아이오와주 등 ‘러스트벨트(옛 공업지역)’를 중심으로 한 5개 산업지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에 대한 ‘반대’가 56%로 ‘찬성(41%)’을 크게 웃돌아 백악관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스트벨트는 대선에서 대표적인 ‘경합주(swing state)’로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과 관세 폭탄을 앞세운 선거운동으로 싹쓸이하며 백악관 입성의 디딤돌이 된 지역들이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미국민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갈망하는 양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몬머스대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7%만 트럼프 대통령의 연임을 지지했고 60%는 백악관의 새 주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응답은 지난해 11월 몬머스대가 같은 질문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도 40%에 그친 반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2%를 기록해 퀴니피액대의 조사 결과와 비슷했다.
다만 미 대선이 1년 반가량 남은데다 미중 무역협상이 극적 타결될 가능성도 있어 무역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끝까지 족쇄가 될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이날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중국과의 무역협상과 관련해 “여전히 희망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6월 말에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워싱턴 정가는 내년 대선을 둘러싼 힘겨루기와 주도권 싸움에 한층 열을 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인프라 투자 및 예산 확보를 협의하기 위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만나기로 했지만 3분 만에 회동을 일방적으로 종료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남 장소에 15분 정도 늦게 도착해 화난 표정으로 악수도 하지 않고 펠로시 의장에게 “끔찍한 말을 했다”고 비난한 후 답변도 듣지 않은 채 나가버렸다고 WP는 전했다.
펠로시 의장이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모색하는 민주당 내 비공개모임에 참석한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펠로시 의장도 이후 “대통령은 사법 방해를 하고 은폐에 바쁘다. 이는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라고 맞불을 놓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