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가 발주한 바라카 원전 장기정비계약(LTMA)을 놓고 해외 업체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단독수주’가 결국 날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UAE 원전 운영사인 ‘나와’가 한국에 유리한 경쟁입찰 대신 입찰에 참여한 한국·미국·영국 등 3개사에 하도급 형태로 물량을 나눠주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목표한 수주금액의 33%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26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UAE가 바라카 원전 LTMA을 기존의 경쟁입찰 대신 하도급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한국·미국·영국 등 3개사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와가 원전 운영과 정비업무를 총괄하는 대신 전문성이 필요한 정비업무는 3개사에 하도급 형태로 나눠주는 방식이다. 이 같은 입찰방식이 적용되면 2조~3조원 규모의 사업 총액을 모두 수주하려던 한국수력원자력·한전KPS 컨소시엄(팀코리아)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팀코리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 협상단은 현재 UAE 아부다비에 체류하며 나와 측이 제안한 새로운 형태의 LTMA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계약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나와 측은 사업 총금액을 낮추는 동시에 각국 원전 운영·정비 분야의 노하우를 최대한 확보하려 한다”며 “한국은 정비업무를 통으로 맡는 방식을 선호하지만 나와 측이 입찰방식 변경을 계획하고 있어 수주금액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첫 수출형 원전인 UAE 바라카 원전의 LTMA는 향후 10~15년간 원전의 각종 정비를 책임지는 사업으로 총 사업금액은 최대 3조원에 달한다. 당초 나와 측은 팀코리아와 수의계약을 논의하다 지난 2017년 돌연 경쟁입찰로 수정했다. 이후 영국의 두산밥콕, 미국의 얼라이드파워가 수주전에 가세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나와가 쪼개기 하도급 수의계약을 포함한 여러 방안을 생각하는 것 같다”며 “발주처가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 현재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수의계약→경쟁입찰→하도급 변경
‘나와’의 가격낮추기 전략 분석 속
“한국 원전에 대한 불신” 지적도
대규모 정비계약 수주에 ‘적신호’
한국 기업이 (UAE 바라카 원전에 대한 LTMA 수주를 놓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원전업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26일 UAE 바라카원전의 LTMA에 대해 “원전 운영사인 나와가 기존 경쟁입찰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나와가 새로운 계약 정책을 확정하지는 않았다”고 상황을 전했다. 현재까지 나와가 제시한 방안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원전 운영사인 나와가 직접 정비 업무까지 맡으면서 핵심 정비 업무를 나눠 입찰에 참여한 3개사에 하도급 수의계약 형태로 넘기는 방안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애초에 사업 전체(2조~3조원)를 따내기를 기대했던 한수원·한전KPS 컨소시엄(팀코리아)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의 수주만 확보할 공산이 크다. 최근 한국의 원자력 60주년 기념식 참석차 방한한 UAE원자력공사(ENEC)의 모하메드 알하마디 사장이 한국 기자들의 LTMA 입찰 결과 발표에 대한 질문에 “미안하다. 다음 기회에”라며 말을 아낀 것도 계약 방식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NEC는 한국전력(18%)과 함께 나와 지분 8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UAE 측의 이러한 변화된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양한 원인 분석이 나온다.
◇나와의 협상 전략?=선 원전업계에서는 나와 측이 더 낮은 가격으로 발주하기 위한 협상전략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 알하마디 사장이 김종갑 한전 사장에게 항의서한을 보낸 것이 밑밥이었던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나와는 수주가격을 낮추려면 직접 운영하고 필요한 부분만 3개사에 하도급을 주는 형태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4월 알하마디 사장이 한수원의 모회사인 한전의 김 사장 앞으로 ‘바라카 프로젝트에서 한수원 인력 철수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UAE가 원전 운영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가격도 중요한 요소임은 맞으나 원전 운영과 정비에 대해 업무를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 하는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원전 운영이나 정비 업무는 비슷한 부분이 많아 바라카 원전을 운영하는 나와가 통으로 정비까지 외주를 줘야 하느냐를 두고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고 말했다.
◇대규모 정비계약 수주에 ‘부정적 신호’ 누적=LTMA 대상인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는 한수원이 자체 기술(APR1400)로 원전 4기(총 5,600MW)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한국형 차세대 원전인 ‘APR1400’은 미국 외 노형으로는 최초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 획득이 확실시된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국의 독보적 기술력이라는 것이다. 바라카에 이런 한국형 원전 ‘APR1400’이 건설되는 만큼 팀코리아가 2조~3조원 규모의 LTMA를 수의계약 형태로 체결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한수원은 2016년 LTMA와 함께 원전의 핵심 운영권으로 꼽히는 운영지원계약(OSSA)도 이미 따냈다. 하지만 나와가 계약 형태를 변경하려는 이번 시도를 포함해 팀코리아의 LTMA 수주에 대한 부정적 신호가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우선 2017년 수의계약이 경쟁입찰로 바뀌면서 영국의 두산밥콕, 미국의 얼라이드파워 등 수주 경쟁자가 생긴 것이 가장 뼈아팠다. 자칫 수주를 놓치면 한국형 원자로의 정비 업무를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가 맡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LTMA보다 사업금액은 아주 작지만 장기서비스계약(LTSA·약 1,200억원)이 한국 측에 사전 통보 없이 프랑스전력공사(EDF)로 넘어가기도 했다. 애초에 올해 4월까지 경쟁입찰의 결론이 나올 것이라던 예측이 빗나간 것도 수주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키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나와의 새로운 제안에 대해 “경쟁입찰에서 떨어져 아예 수주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일부라도 확보할 수 있게 된 측면은 있다”면서도 “다만 애초에 사업 전체를 수의계약으로 가져올 기회를 놓친 것이 두고두고 팀코리아의 입지를 좁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