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유럽의회 중도 쇠퇴…세력 넓힌 '극우·녹색'

수십년간 유럽의회 지배해온

'EPP·S&D 대연정' 과반 붕괴

反난민·EU 포퓰리스트 약진속

親EU성향 녹색당 계열도 '미소'

그리스선 조기 총선 결정되고

EU집행위원장 유력후보도 타격




26일(현지시간) 끝난 유럽의회 선거는 유럽 정치지형에서 오랜 기간 ‘중도’에 머물렀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번 선거에서 수십년간 이어온 중도·유럽통합 성향 정당의 세력이 약화하고 ‘반(反) 유럽연합(EU)’ 성향의 극우·포퓰리즘 정당이 전체의 4분의1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하며 의미 있는 규모의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친(親)EU 세력이 3분의2가량을 차지하긴 했지만 압도적인 과반의석 그룹이 없는 상황에서 극우·녹색당이 30%를 넘기며 EU는 앞으로 5년간 본격적인 ‘분열의 시대’를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유럽의회 발표에 따르면 27일 오전3시(현지시각) 현재 ‘반난민’ ‘반EU’를 내세운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은 예상대로 눈에 띄는 약진을 보인 반면 기존 제1~2당인 유럽국민당(EPP)·사회당(S&D)의 쇠퇴가 두드러졌다. 자유와직접민주주의(EFDD)·국가와자유의유럽그룹(ENF) 등 민족주의를 내세운 극우·포퓰리스트 세력은 기존보다 18석 늘어난 172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체 유럽의회 의석의 4분의1에 육박하는(22.9%) 수준이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정국으로 가뜩이나 EU 분열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EU 내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이다.


브렉시트를 앞둔 영국은 물론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에서도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이 약진했다. 특히 영국은 신생정당 브렉시트당이 31.71%의 지지를 얻은 반면 여당인 보수당(8.71%)과 제1야당인 노동당(14.05%)은 브렉시트 혼란에 대한 싸늘한 국민 여론을 실감해야 했다.

반면 기존 유력정당들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전체 751석 가운데 중도 우파 성향의 EPP그룹은 179석을 얻어 제1당 자리를 지켰지만 의석 수는 기존 217석에서 38석 줄었다. 중도좌파 성향의 S&D그룹 역시 2위를 유지했지만 기존보다 36석 감소한 150석에 그쳤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킨 극우파 정당 지도자인 나이절 패라지(왼쪽부터) 영국 브렉시트당 대표,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26일(현지시간) 각국에서 기자회견 도중 벅찬 표정을 짓고 있다.     /사우샘프턴·파리·밀라노=로이터·AFP연합뉴스유럽의회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킨 극우파 정당 지도자인 나이절 패라지(왼쪽부터) 영국 브렉시트당 대표,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26일(현지시간) 각국에서 기자회견 도중 벅찬 표정을 짓고 있다. /사우샘프턴·파리·밀라노=로이터·AFP연합뉴스


이에 따라 지난 수십년간 유럽의회를 지배해온 ‘EPP·S&D ‘대연정’은 과반의석(376석)에서 한참 모자란 329석 확보에 그치며 새로운 파트너가 절실해졌다. 가장 유력한 새 파트너는 중도·유럽통합 성향의 자유민주당(ADLE)그룹으로 이번 선거에서 의석 수를 50%가량 늘려 107석으로 제3당에 올라 있다. 또 친EU 성향의 녹색당 계열도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우려에 힘입어 현재 의석 수(52석)에서 18석을 늘리며 70석(전체 의석의 9.3%)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회에서 ‘EPP·S&D ‘과점체제’ 붕괴가 확실시되는 만큼 EU 행정부 수반 격인 집행위원장 선출에서도 파장이 예상된다. 그간 EPP 집행위원장 후보로 선출돼 이번 선거를 총괄해온 만프레드 베버 ‘대표후보(슈피첸칸디다텐)’가 집행위원장 후보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변수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유럽 각국의 정치판도에도 벌써 후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야당에 크게 밀린 것으로 드러나자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으며 이를 무시하거나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며 26일 밤 조기총선 실시를 선언했다. 당초 오는 10월로 예정된 선거는 한 달가량 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연합도 역대 최악의 유럽의회 선거 결과로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의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SPD) 역시 득표율이 크게 떨어져 메르켈 정부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역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포퓰리즘 성향의 국민연합(RN)에 1위를 내줘 향후 국정과제 추진과 EU 개혁 구상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유럽의회 선거의 투표율은 51%를 넘어서며 지난 20년래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反)EU’를 내세운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적극적으로 선거 참여를 호소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친EU’ 성향의 유권자들도 대거 투표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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