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25년 전 도난당한 보물 '만국전도' 발견···경찰, 절도 혐의 피의자 2명 검거

양녕대군이 쓴 숭례문 목판 등 123점

피의자들 식당·비닐하우스 등에 은닉

문화재청이 훼손된 문화재 복구 마쳐

국보 1점 등 도난문화재 12점 미회수

경찰이 피의자로부터 회수한 직후 복구를 거치지 않은 만국전도./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경찰이 피의자로부터 회수한 직후 복구를 거치지 않은 만국전도./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008호인 ‘만국전도(萬國全圖)’를 포함해 25년 전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화재 총 123점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들 문화재를 훔쳐 장기간 은닉해온 혐의를 받는 중년 남성 2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문화재청과 공조해 피의자(50) A씨와 피의자 B(70) 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보물 제1008호로 지정된 만국전도와 고서적들이 장물임을 알면서도 취득한 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숨긴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해 8월 1994년께 도난된 것으로 추정되는 만국전도를 매매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문화재청과 공조 수사를 통해 검거에 나섰지만 수사망이 좁혀오자 A씨는 도주했다. 이후 경찰은 통신내역과 계좌를 추적해 A씨의 거주지를 파악, 그가 운영하던 식당 내부 벽지에 은밀히 숨겨진 만국전도와 고서적들을 회수했다.

경찰조사에서 A씨는 “해당 문화재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했다”며 “모르는 사람에게 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가 과거 고미술품을 판매했고 동종의 전과가 있다는 점, 만국전도의 보물지정 및 도난 사실이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A씨가 만국전도의 가치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고 봤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만국전도가 국가지정문화재인지 모른채 구매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문화재 절도 사범들의 일반적인 범행 수법”이라고 밝혔다.

만국전도는 현종 2년(1661년) 박연설이 그린 가로 133㎝, 세로 71.5㎝ 크기의 지도다. 지난 1989년 함양박씨 문중의 다른 고서적들과 함께 지정문화재 보물 제1008호로 지정된 바 있다. 1994년께 동대문 인근에서 도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는 민간에서 필사한 국내 세계지도로서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성희 문화재청 감정위원은 “만국전도는 실학과 서학을 받아들였던 17세기 조선 당시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의 친필 서체를 기초로 제작된 숭례문 목판. /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의 친필 서체를 기초로 제작된 숭례문 목판. /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한편 B씨 역시 ‘숭례문 목판’ 등 도난당한 문화재의 가치를 알면서도 자신의 비닐하우스에 장기간 은닉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2017년 10월께 종로구 소재의 한 예술품 경매회사가 개최한 불교미술품 특별전에서 도난당한 양녕대군의 친필 목판 등을 판매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후 경찰은 11월 문화재청과 함께 경기 양평에 있는 출품자의 주거지를 수색해 비닐하우스 창고에서 목판 6점을 회수했다.


경찰은 B씨가 오랜기간 골동품 매매업을 해온 점 등 도난된 목판 등의 가치를 알만큼 평소 문화재에 대한 조예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또 양녕대군의 한시가 양각된 ‘후적벽부(後赤壁賦) 목판’도 이번 수사를 통해 함께 발견됐는데 한시 말미에는 그 출처와 소장처가 명확히 밝혀져 있다. 경찰은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B씨에게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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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견된 숭례문 목판과 후적벽부 목판은 모두 태종의 장자인 양녕대군의 친필 목판이다. 특히 숭례문 목판의 경우 숭례문 세 글자가 양각된 현존하는 유일한 목판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2008년 화재 이후 복원한 숭례문의 현판도 숭례문 목판의 서체를 따 제작했다. 후적벽부는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겨울 달밤의 쓸쓸한 정감을 읊은 한시를 양녕대군이 초서체로 작성한 것이다. 이 역시 양녕대군의 유묵(遺墨)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하다.

경찰이 회수한 후적벽부 목판 4점.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한시를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이 초서체로 옮긴 것을 목판화했다./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경찰이 회수한 후적벽부 목판 4점.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한시를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이 초서체로 옮긴 것을 목판화했다./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이번에 회수한 문화재는 만국전도와 숭례문 목판 등을 포함해 총 123점이다. 이로써 도난당한 국가지정문화재 총 13점(국보 1점, 보물 12점) 가운데 1점을 되찾았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로부터 회수한 문화재들은 도난 당시에 비해 훼손된 상태였으며 현재는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에서 복구 과정을 거쳤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 회수해야 할 문화재가 많다”면서 “문화재 도난 수사에 편성된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협조를 당부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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