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시간은 하나의 선이 아닌 흩어진 점

■카를로 로벨리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올 서울포럼 강연 로벨리 교수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 토대로

시간에 대한 일반 통념 깨뜨려

'우주의 시간, 지구와 별개' 강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의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교수. /서울경제DB‘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의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교수. /서울경제DB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간이 지구에서 경험하는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왜 인간은 과거만 기억할 수 있고 미래는 떠올리지 못하는 것일까.

신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흔히 우리가 품고 있는 시간을 둘러싼 궁금증에 대한 충실한 답변서와도 같은 책이다. 저자인 카를로 로벨리(63·사진)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이론물리학센터 교수는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고 불릴 만큼 현대 과학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학자 중 한 명이다. 양자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결합한 양자중력 이론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달 15일 열린 ‘서울포럼 2019’의 기조 강연자로 나서 귀한 지식과 통찰을 청중들에게 들려준 바 있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첫 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등 세 권의 저서는 이미 국내에도 출간돼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신작은 시간에 대한 인간 일반의 통념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보통 사람들은 시간을 유일성·독립성·방향성 등 세 가지의 층위에서 파악한다. 유일성은 우주에는 단 하나의 시간대만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방향성은 시간이 반드시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독립성은 시간이 다른 어떤 존재의 영향도 받지 않고 규칙적이고 일정하게 흐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모두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오류라고 꼬집는다. 우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토대로 유일성·독립성의 신화를 깨부순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이 간파했듯 시간의 개념은 중력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중력이 커질수록 시간의 흐름은 점차 느려진다. 이 때문에 블랙홀 근처에서의 몇 분은 지구에서의 수백 년에 해당한다. 심지어는 지구의 같은 도시 안에서도 지구 중심과 좀 더 멀리 떨어진 산에서의 시간이 평지보다는 미세하게 빠르게 흐른다. 시간은 유일무이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은 존재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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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일관된 방향으로 흐른다는 생각 역시 잘못된 통념이다. 인간은 과거·현재·미래를 연속된 하나의 ‘선(線)’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저자는 우주에는 단일한 선이 아닌 무수히 흩어진 점(点)으로서의 시간만 존재할 뿐이며 과거·현재·미래로 시간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로벨리 교수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원제인 ‘시간의 질서(The Order of Time)’는 역설적인 의미가 담긴 제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뜻 시간은 정연한 순서와 질서를 품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는 인간이 모여 사는 지구라는 행성의 특수한 양상일 뿐 우주의 본질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구가 평평해 보여도 사실은 구면(球面)인 것처럼 우주의 시간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게 작동한다’고 강조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쓴 전문 서적인 만큼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단락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저자의 문체가 간결하고 단정하며 번역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져 있는 덕분에 논의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계를 상정했던 플라톤, 시간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일러주는 척도라고 생각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물의 변화와 상관없이 묵묵히 흘러가는 시간의 존재를 인정했던 아이작 뉴턴 등 시대와 분야를 가로지르는 대가들의 이론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매우 아름답고 시적인 문체로 과학의 현안을 파고든 이 책을 읽고 나면 관습적인 통념에서 탈피해 세상과 시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장착하게 된다. 1만6,000원.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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