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한심한 행정에…전동킥보드 규제혁신 '헛바퀴'

이게 바로 '황당한 혁신서비스' 현장

'안전성' 마련 연구기관 못 정해

3개월 지나서야 연구용역 시작

연내 규제 개혁 약속 물 건너가

인프라 마련 안돼…업계 속앓이

1715A01 전동킥보드 판매 규모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수단(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막상 정부가 약속한 규제개혁은 올해 안에 실행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혁신 서비스는 이미 시작됐는데 느려터진 행정과 뒷짐 쥔 정치권 때문에 관련 인프라는 마련되지 못한 한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관련 규정이 미비해 지금처럼 전동킥보드가 차도와 인도를 오갈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안전성을 높여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 당국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개인형 이동수단 활성화 및 안전에 관한 연구’ 용역의 입찰을 진행한 뒤 단독응찰한 곳에 대해 적격성 여부를 평가하고 있다. 지난 3월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주관한 규제·제도혁신 해커톤에서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허용 등 주행안전기준을 제정하기로 합의한 후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관련 연구조차 시작하지 못한 셈이다. 4차산업혁명위는 시속 25㎞ 이하 전동킥보드가 자전거도로를 주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제품과 주행안전기준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국토부가 설정한 연구용역의 수행기간은 6개월이기 때문에 이달 중 연구에 착수한다고 하더라도 주행안전기준이 마련되고 실제 적용되는 시점은 내년 이후로 넘어간다. 당초 지난해 9월 범부처 태스크포스(TF)의 ‘현장밀착형 규제혁신 방안’에서 내건 전동킥보드의 안전기준 마련 시점은 올해 6월이었지만 반년 이상 뒤로 밀리게 됐다. 반면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의 빠른 확장으로 전동킥보드 판매 규모는 3년 후 최대 3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제도 마련이 늦어지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전동킥보드의 차도 운행이 계속되면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높아져 짧은 거리를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1인 모빌리티의 장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한 관계자는 “현재 도로교통법상 전동킥보드는 차도에서만 달려야 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다”며 “자전거도로 주행이 빨리 허용돼야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전거도로 허용 시급한데...말뿐인 규제개혁에 법안까지 꽉 막혀

# 직장인 A씨는 퇴근 후 서울 강남에서 근처 약속 장소까지 전동킥보드를 타고 가던 중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을 했다. 차도 가장자리로 전동킥보드를 몰았지만 차량 사이로 배달 오토바이가 빠르게 지나가는 와중에 전동킥보드와 부딪힐 뻔한 것이다. A씨는 “인도에서는 행인 사이를 지나가기 어렵고 차도에서는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 때문에 위협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퍼스널 모빌리티의 문제는 정부 당국의 늑장 행정이 혁신 서비스 확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허용 도로 등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킥보드만 늘어나면 심각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책임 소재에도 문제가 생긴다. 도로교통법과 보험업법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자율주행차가 도로에 등장하는 꼴인 셈이다.



연구용역을 맡긴 국토교통부 역시 제안 배경을 통해 “개인형 이동수단은 친환경, 교통혼잡·주차 문제 완화 등의 장점이 있지만 현행 제도가 미비해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며 “관련 사고도 증가하고 있어 이용자의 안전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동킥보드 운영 업체들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규제 개선 방안은 ‘자전거도로 주행 허용’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전동킥보드가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돼 있어 차도에서만 운행이 허용되며 관련 주행기준도 없다. 하지만 시속 25㎞ 이하 전동킥보드를 차도에서 몰게 되면 위험스러운 상황이 자주 발생하며 반대로 인도에서는 보행자들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실제로 전동킥보드 시장이 커지면서 사고 건수도 함께 급증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6년 6만대가량이었던 전동킥보드는 오는 2022년 20만~30만대 수준으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와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사고 역시 2016년 84건에서 지난해 233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전동킥보드를 빗대 ‘킥라니(킥보드+고라니)’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미 싱가포르에서는 개인형 이동수단이 자전거도로를 달릴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독일도 관련 면허를 신설해 자전거도로와 차도를 주행할 수 있도록 했다.

업계에서는 제한적인 수준에서 안전을 당부하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인 상황이다.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킥고잉’을 운영하는 올룰로는 이용자들에게 안전을 위해 이면도로를 이용해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씽씽’을 시범 운영하고 있는 피유엠피(PUMP)도 안전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있다. PUMP 관계자는 “(주행안전기준과 관련된) 유관기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주행안전기준이 빨리 정립되기를 바라는 업계의 목소리와는 달리 실제 제도 마련과 시행이 언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인형 이동수단 활성화 및 안전에 관한 연구’ 용역의)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연구를 바탕으로 (주행안전기준이) 마련될 수도 있고 관계부처가 조율해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법안 역시 언제 통과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은 2월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수단의 자전거도로 주행을 허용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의원은 “개인형 이동수단의 자전거도로 통행을 허용하지 않아 안전하고 합리적인 이용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개정안은 2월 발의됐지만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논의된 적 없다.

이 밖에 제품 인증 기준 마련도 업계가 필요로 하는 개선 방안 중 하나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핸들·바퀴 등 따로 인증을 받아야 해 전동킥보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며 “한국 실정에 맞는 인증 기준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권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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