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레코드(실적)를 쌓지 못한다면 10년간 공들여 만든 장비와 기술이 사장(死藏)될 수 있습니다”
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에서 만난 장인성(사진) 수중건설로봇사업단장은 이같이 걱정부터 쏟아냈다. 깊은 바닷속에서 암반 파쇄와 케이블 매설, 각종 구조물작업을 척척 해내는 수중로봇 3형제인 ‘URI-L’, ‘URI-T’, ‘URI-R’의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막 2단계 사업화를 시작한 만큼 기대가 앞설 것이라는 기대와 정반대였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 수중건설로봇의 꿈을 키웠다. 당시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의 연구기획 사업으로 시작해 2010년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그 해 하반기 예비타당성 조사의 관문을 넘지 못했다. 이듬해인 2011년 다시 기획에 나섰고 2013~2019년 1단계로 로봇들을 개발하고 인프라를 만드는 1단계 연구를 따내 지금까지 달려왔다. 물론 앞으로 4년간의 사업화 연구를 다시 진행하는 만큼 상황은 희망적이지만 현실의 벽은 이보다 높다는 게 장 단장의 말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장비라고 해도 확실한 실적이 없는 장비를 해양 개발업체에서 쓰려고 하지 않는다”며 “국내나 국외, 정부나 민간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제 사업의 경우 공사기간이 곧 돈이고 품질이 생명이다. 이미 검증된 외산장비가 있는 상황에서 20~30% 저렴한 국산 신장비를 쓰는 데 위험부담이 적지 않다 보니 선뜻 가격만 보고 선택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장 단장은 “실제 많은 연구개발(R&D) 과제들이 사업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연구단계에서 멈춘다”며 “우리도 많은 트랙레코드를 쌓아야 자신감이 더해지는 만큼 최대한 기회를 찾고 싶지만, 극단적으로 공짜로 공사를 대신해준대도 선뜻 현장을 내주는 경우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첫 단추를 꿰어야 할까. 장 단장은 “각 부처 연구과제에서 협업할 기회를 찾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해상 풍력이나 해양플랜트, 해저 터널 같은 바다와 관련된 연관 R&D 과제들을 수행할 때 해저 로봇이 필요하면 수중건설로봇사업단의 ‘URI’ 시리즈를 우선 채용하는 식이다. 그는 “바다 관련 과제들이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퍼져있어 긴밀한 협력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며 “건설로봇은 트랙레코드를 쌓고 연구주체는 적은 비용으로 로봇을 빌리는 ‘윈-윈’ 모델이 작동하게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는 등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수중건설로봇이 실제로 활용될 시장도 더 열려야 한다는 게 장 단장의 판단이다. 항만과 방파제 같은 수중구조물 점검과 유지관리를 지금은 잠수사들이 맡고 있지만, 업무 일부를 로봇이 대체한다면 검사의 객관성을 높이고 운용 효율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관련 인력 양성도 숙제다. 장 단장은 “우리나라에는 이렇다 할 수중로봇 관련 커리큘럼과 경진대회도 없다”며 “앞으로 해양산업은 점점 커지는 만큼 중고생들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뛰어들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