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9일 제조업 르네상스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요 경제단체에 환영 입장을 밝혀달라고 직간접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단체들은 정부가 정책 띄우기에 몰입하고 있다며 황당해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상명하달의 전형’이라며 혀를 찼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복수의 주요 경제단체와 제조업 협회 등은 19일 정부 관계자로부터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과 전략’ 발표에 맞춰 지지 입장을 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협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책 발표 이후 각 산업별 협회 차원에서 언론 홍보를 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제5단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긍정적으로 평가해달라는 식의 협조 요청을 받았다”며 “다른 경제단체에 이 같은 협조 요청이 왔었다는 내용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 발표에 이어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바이오협회·반도체산업협회·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환영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앞서 오는 2030년까지 제조업 부가가치율, 신산업·신품목 비중 등을 30%로 끌어올리는 비전 등을 담은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내놓았다. 발표 직후 주요 경제단체와 제조업 협회는 ‘제조업의 청사진과 전략이 제시됐다’는 내용을 담은 환영 성명을 잇달아 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경제단체나 협회에 홍보를 요청한 적이 없다”며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만큼 자발적으로 성명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홍보 압박은 전혀 없었다”며 “이번 대책으로 정부와 재계가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창구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익명을 요청하며 정부의 부탁이 있었다고 잇따라 증언했다. 이들은 정부가 추상적인 목표를 늘어놓고 홍보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재계가 당면한 문제를 해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재계의 한 임원은 “과거 정권 때도 제조업 대책, 무역투자진흥회의 등을 발표할 때 논평 같은 것을 매번 내놓지는 않았다”며 “압력이 들어와서 내놓는 논평에 누가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제조업 대책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으로 하는 첫 행사였던 탓에 산업부에서 굉장히 챙기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며 “그런 와중에 (논평 요구라는) 일종의 ‘오버’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치사에 신경 쓰기보다는 진짜 기업들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잇달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관료들이 문제”라며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허탈해했다. 그는 “지금이 포장지만 화려한 대책을 내놓는다고 경제가 좋아질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솔직히 이번 대책에서 기업들이 원하는 규제 완화, 노동 개혁 등의 대책은 죄다 빠졌다”고 지적했다. 경제 관련 협회의 한 관계자는 “큰 그림을 제시했다고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융복합’ ‘친환경’ 등 내용이 공허하다”며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이끌기보다는 기업이 막힘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박효정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