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못살겠다" 고국 떠난 베네수엘라인, 콜롬비아 무장 단체로 충원돼

군 지휘관 "동부 국경 반군세력 중 30% 가량 베네수엘라인"

FARC, 정부와 평화협정 맺었지만 내전 이어가

식량과 금전적 보상 제시하며 무장 단체로 끌어들여

베네수엘라 이주민, 각종 범죄에도 노출되기 쉬워

지난해 2월 17일(현지시간) 한 베네수엘라 이주민이 브라질 호라이마주 시몬 볼리바르 광장에서 식량을 제공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호라이마=블룸버그지난해 2월 17일(현지시간) 한 베네수엘라 이주민이 브라질 호라이마주 시몬 볼리바르 광장에서 식량을 제공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호라이마=블룸버그



“그들은 나에게 옷과 음식, 돈, 심지어 휴대폰도 주겠다고 했다. 유혹을 느꼈지만 무서웠다.”

스무 살 베네수엘라 청년 그레고리오가 도탄에 빠진 고국을 떠나 콜롬비아 땅에 발을 내닫자마자 받은 제안은 무장 단체의 전투 요원이 되는 것이었다.


은밀한 제안을 받은 것은 그레고리오뿐만이 아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끔찍한 가난과 식량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은 베네수엘라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당장 먹고살 수 있는 빵과 돈을 얻기 위해 콜롬비아 반군과 민병대의 전투 요원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군 세력이 세력 확장을 위해 베네수엘라의 불법 이주자들을 앞다퉈 충원함에 따라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위기가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콜롬비아는 옛 최대 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가 주축이 돼 50년 넘게 내전을 이어오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FARC와 수 차례의 평화협상 시도 끝에 지난 2016년 9월 마침내 내전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평화협정에 반대하며 무장해제 대열에서 이탈한 FARC 잔존 세력이 재무장해 민족해방군(ELN), 우익 준군사조직, 마약 밀매단 등과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콜롬비아군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도 31개 FARC 무장 조직이 코카인의 재료인 코카 잎 재배 지역과 불법 금광 채굴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9월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콜롬비아 엘 디아만테 야리 평원엥서 열린 제10차 국가 게릴라 회의 중 커피를 따르고 있다. /엘 디아만테=블룸버그2016년 9월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콜롬비아 엘 디아만테 야리 평원엥서 열린 제10차 국가 게릴라 회의 중 커피를 따르고 있다. /엘 디아만테=블룸버그


이러한 무장 단체들은 2,219㎞에 달하는 베네수엘라 국경 지역을 횡단하면서 불법 월경한 베네수엘라인을 끊임없이 충원하고 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콜롬비아 동부 국경 지역에서 활동 중인 반군세력 중 30%는 베네수엘라인으로 알려졌다. 콜롬비아 군은 정보원, 탈영병, 체포된 반군, 주민들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전국적으로 무장 세력의 약 10%가 베네수엘라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콜롬비아 동부 국경 지역인 아라우카 주를 담당하는 특수부대 사령관 아르눌포 트라슬라비나 대령은 베네수엘라인이 충원되면서 “불법 무장 단체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이는 치안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1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이주민들이 브라질 호라이마주 시몬 볼리바르 광장에서 음식을 제공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호라이마=블룸버그지난해 2월 1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이주민들이 브라질 호라이마주 시몬 볼리바르 광장에서 음식을 제공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호라이마=블룸버그


콜롬비아 무장 단체들이 베네수엘라인들을 전투 요원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내국인들보다 이들을 끌어들이기가 쉽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이주민들은 살인적인 고물가와 식품·생필품난, 치안 불안, 정치 혼란 등을 피해 거의 맨몸으로 고국을 떠난 이들이다. 기본적인 생필품과 최소한의 생계 유지 비용도 없이 타국으로 건너 온 베네수엘라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약간의 식량과 금전적 보상만으로도 기꺼이 무장단체에 합류할 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실제 일부 베네수엘라인들은 로이터통신에 콜롬비아로 입국할 당시 접근한 무장 단체들로부터 충원을 제안받았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전투) 훈련은 6개월 가량 진행될 것이며 수준에 따라 봉급이 지급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제안을 받았으나 “(무장단체) 활동이 언제 시작되는 지는 알 수 있지만 우리가 언제 떠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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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통신에 따르면 무장 단체에 합류했다가 이탈하거나 전투에서 사망한 베네수엘라인들도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온 이들이 도리어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전부터 베네수엘라 이주민 행렬은 국제적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이들이 합법적 체류 지위를 얻지 못한 채 다른 국가의 착취, 인신매매, 외국인 혐오 범죄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민자가 많이 모여드는 접경 지역에서는 마약 밀매, 성매매, 강도 등 각종 범죄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늘어나는 베네수엘라 불법 이주민들이 콜롬비아 반군단체들의 충원 제안으로 전쟁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베네수엘라발(發) 중남미 정세 불안은 한층 고조될 것으로 우려된다.

국제이주기구(IOM)와 유엔난민기구(UNHCR) 추산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베네수엘라에서 탈출할 이주민은 전체 인구 3,277만 명 가운데 5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콜롬비아 군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FARC 잔존 세력과 ELN의 전투원 규모는 각각 2,296명과 2,402명이다. 도시에서 활동하는 세력까지 합하면 두 반군의 수는 8,400명에 달한다.

전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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