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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스토리] 국회서 '집배원 예산' 사라져...인력부족·11시간 중노동 '신음'

[집배원 135년만에 첫 파업결정 왜]

지난해 예결위까지 올라갔지만

소소위 논의 과정서 통째로 빼

勞 "추경으로라도 해달라" 요구

정부선 "법적요건 안맞다" 팔짱

노조 93% 찬성 내달 9일 총파업

인력 확충·주5일 근무제 도입 요구

전국우정노동조합원들이 2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총파업 가결을 알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전국우정노동조합원들이 25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총파업 가결을 알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평소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충남 당진우체국의 집배원 강모(49)씨는 지난 19일 자택 화장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강씨는 올해 건강검진에서 특이소견이 없다는 결과를 받은 상태였다. 대전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으나 과로사 가능성이 높다고 동료들은 보고 있다. 지방의 한 집배원은 “아무래도 지방이다 보니 담당하는 지역이 매우 넓은데 우편을 담당할 인원은 많이 부족했다. 하루 십여시간씩 일하고도 다음날이면 또 업무에 허덕여야 했다”고 전했다.

강씨의 죽음은 특이한 사례가 아니었다. 사고사나 지병인 경우를 제외해도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7명씩 심혈관질환 등으로 인한 집배원들의 돌연사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도 모두 9명의 사망자 중 5명이 돌연사였다. 과로에 따른 돌연사 공포에 휩싸인 집배원들은 우정사업 130년 사상 초유의 총파업을 예고했다. 전국우정노조는 쟁의행위에 대한 조합원들의 찬반 의견을 물은 결과 투표 참여자 92.87%(2만5,247명)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오는 7월9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인력 충원, 주 5일 근무제 도입 등이다. 우정노조는 위탁계약 관계인 위탁 집배원과 공무원인 집배원의 인력을 늘리는 ‘투트랙’을 요구했다. 공무원 증원은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장기간의 절차가 필요해 현재는 노사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위탁 집배원을 증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규모를 두고 이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리적 협상시한이 26일이어서 시간이 촉박하다. 앞서 11일 노조 측이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한 상태인데 해당 조정기간이 26일 만료된다. 노조 관계자는 사용자인 우정사업본부가 인력 확충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용자인 우본 측 관계자는 “집배원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풀어갈 계획이지만 현실적으로 예산 한도 내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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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의 적자 규모는 지난해 1,450억원에 달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올해는 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가 우체국 파업으로까지 이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예산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우편사업 예산을 늘리려면 우편요금이나 보험 등 특별회계의 수익금 이전이 필요한데 이는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애초 올해 예산안에 집배원 1,000명을 늘리기 위한 379억5,200만원이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 예결위원회까지 올라갔지만 지난해 말 소소위 논의 과정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소소위는 법적 근거도 없고 회의록도 남지 않아 정확한 이유를 따지기 어렵다. 우정노조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에라도 반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추경의 법적 요건에 부합할지 자신하기 어렵다는 게 기재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하지만 수백억원 수준의 예산 마련이 어렵다는 해명은 당장 사지로 몰린 집배원들에게 좀처럼 수용되기 어려운 핑계로만 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이 조사한 집배원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하루 평균 11시간 6분에 달한다.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 근로시간(2,052시간)보다 693시간 많다. 올해 집배원 초과 근무시간은 1인당 주 7.4시간이었다. 주 평균 12시간을 초과해 일한 집배원만 2,488명에 달했다.

2615A02 인력


2615A02 노동시간


우본은 집배원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은 인정하지만 전반적으로 많이 개선됐다고 항변한다. 지속적으로 인력을 충원해 2018년도 집배 인력을 전년 대비 5.8%인 1,107명 증원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13년 1만8,301명이던 인력은 2만256명이 됐다고 한다. 또 위탁물량을 늘려 자체적으로 업무 부담을 외부로 분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013년 대비 지난해 1인당 업무량은 14.2% 줄었고 월간 초과근무시간은 같은 기간 50.7시간에서 43.1시간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그밖에도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통상우편물 격일배달, 집배인력 재배치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덧붙였다. 집배원의 배달순서를 구분해주는 순로구분기도 최신형 자동 장비로 도입해 집배원들의 업무편의성을 높였다고 한다.

노조는 우본이 근로여건 개선 노력을 보였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반면 우본과 정부 당국은 민간 우편물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인력을 확충하면 경영 악화가 심화해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양측이 평행선을 걸을 경우 우편 대란이 불가피하다. 파업에는 노조원 중 필수유지업무에 필요한 인력(1만4,000여명)을 뺀 나머지 대부분이 참여하게 된다. 우본은 총파업 시에도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된 부분은 유지된다고 설명하지만 그 외 업무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필수유지업무 역시 소관 근로자가 정시퇴근을 하게 되면 평상시보다 배달 속도가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은 이날 “하루만 파업하지 않을 것”이라며 “2~3일 정도 파업하면 거의 물류가 멈출 것으로 예상한다.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사흘 정도는 연속해서 파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병권·변재현기자 newsroom@sedaily.com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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