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특허분쟁 국제재판부 1년째 '개점휴업'

유학 경험·영어 능숙한 법관 중심

중앙지법·특허법원에 설치했지만

4개 합의부 2심 1건, 1심은 0건

법률 비용 높고 韓시장 좁은 탓

기업들 재판 외면에 자리 못잡아

다른 법원서도 도입 논의 올스톱




지식재산권(IP) 소송의 글로벌화에 맞춰 법원이 의욕적으로 도입한 국제재판부가 1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개점휴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법까지 개정하고 영어 구사가 능숙한 엘리트들로 재판부를 채웠지만 법률 비용만 높고 소송 실익은 떨어져 기업들이 외면하고 있다.

28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13일 국제재판부로 출범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61·62·63부에 접수된 국제재판 신청은 지금껏 단 한 건도 없다. 이들은 특허권리 침해 등과 관련한 1심을 맡는 재판부다. 여기에 소속된 법관들은 모두 유학 경험이 있거나 영어 의사소통에 능한 인재들이다. 그러나 국제재판부 판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1년 넘게 일반적인 한국어 재판 업무만 수행하고 있다. 사건이 없다 보니 전속 동시통역사도 두지 못한 상태다.

국제재판부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것은 특허·디자인·상표권 관련 분쟁의 2심을 맡는 특허법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13일 제3부를 국제재판부로 구성한 특허법원은 지금까지 단 한 건의 국제재판만 진행했다. 지난해 7월20일 특허법원 제3부가 호주 철강기업 ‘블루스코프스틸’의 특허심판원 심결 취소소송을 심리하면서 첫 물꼬를 텄지만 그뿐이었다. 지난 1월 이 사건에 대한 선고가 난 뒤로는 5개월 넘게 국제재판이 성사되지 않았다. 몇몇 기업이 국제재판을 추가로 신청하기도 했지만 소송 상대방의 거부로 모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재판은 소송 쌍방의 동의가 있어야만 열릴 수 있다. 1·2심 통틀어 국제재판 합의부가 총 4개나 구성됐는데도 1년이 넘도록 단 하나의 사건만 처리한 셈이다.


국제재판부는 최근 기업 간 특허분쟁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점을 감안해 외국어를 사용하는 소송당사자에게도 공정한 재판 기회를 주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법정 내 통역사를 두고 소송대리인이나 당사자·법관이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비영어권에서는 사실상 한국이 처음 하는 시도다. 2017년 11월 관련 법원조직법 제62조2를 개정한 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이듬해 6월 본격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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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법조계는 국제재판부가 제대로만 정착한다면 굵직한 글로벌 특허소송에 대해 국내 법원이 일종의 선제적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판사 자원이 우수하고 분쟁 기간이 짧은 한국 사법부의 강점이 국제재판부를 통해 발휘될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잊혀진 재판부’가 돼버리면서 법원 스스로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소송당사자인 기업 입장에서는 전면적 외국어 재판을 수행하는 데 따르는 법률 비용 상승이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대형 글로벌 기업일수록 미국·중국·유럽 시장에 비해 한국 시장의 중요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한 국내 국제재판부에서 값비싼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빠른 승부를 볼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한국에는 미국 등에서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어 국제재판을 이기든, 지든 실익이 크지 않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꼽힌다.

기존 국제재판부가 정착에 난항을 겪으면서 해사 국제재판부는 물론 다른 지방법원의 국제재판부 도입 논의도 ‘올스톱’됐다. IP 전문 로펌 법무법인 다래의 정영선 파트너변호사는 “다국적 소송을 진행하는 외국 기업들은 시장이 크거나 배상액이 많은 국가의 재판에 더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어 국제재판부까지 갈 정도로 한국에 ‘올인’하지 않는다”며 “통역자의 수준을 아주 높게 유지해 신뢰를 우선 얻는 것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IP 전문 변호사들의 의견을 듣고 홍보에도 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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