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업

'애플의 영혼' 조니 아이브 '이탈'이 애플에 미치는 영향은

팀 쿡(왼쪽)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조니 아이브 최고디자인책임자. /AP연합뉴스팀 쿡(왼쪽)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조니 아이브 최고디자인책임자. /AP연합뉴스



애플의 세련된 디자인은 고 스티브 잡스의 작품으로 생각하기 쉽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작 잡스 본인은 디자인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애플 하면 떠오르는 ‘흰색’, 자칫 딱딱할 수 있는 기기에 영혼을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조니 아이브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이다. 물론 그의 재능을 단박에 읽고 그의 세계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줬으니 잡스에게도 응당 ‘애플 감성’의 지분이 있을 것이다.

1967년 영국에서 태어난 조니 아이브는 1992년 애플에 입사했다. 그가 애플의 디자인 팀장이 된 건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였다. 그 후 10여 년 동안 그야말로 손대는 일마다 대박이 났다. 조니 아이브를 처음 세상에 알린 제품은 1998년 내놓은 개인용 데스크탑 컴퓨터 아이맥 시리즈였다. 대부분의 PC가 모노톤이던 시절 반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외관을 감싼 디자인은 매킨토시의 점유율 반등을 가져왔다. 반투명하게 속이 보이는 다소 충격적인 디자인은 그야말로 산업 디자인 전반에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능력이 본격 꽃 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가 1997년 경영 일선에 복귀하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브는 디자인보다 엔지니어 설계를 우선시하던 길 아멜리오 최고경영자(CEO) 체제에 불만을 품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러나 그의 남다른 디자인 철학에서 ‘애플 부활’의 가능성을 읽은 잡스는 아이브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스는 같은 해 아이브를 산업디자인 수석부사장으로 앉히고 디자인 팀의 사내 권한도 확대했다. 디자인이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제품 설계의 중심에 자리하게 만든 셈이다.


이 같은 전폭적인 지지는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디자인을 갖춘 제품의 탄생을 이끌었고, 내놓는 제품마다 열광적인 소비자 반응을 받으며 ‘애플의 전성기’를 이뤄냈다. 잡스가 사망 전까지 애플의 경영진들에게 디자인에 관해서는 아이브에게 일임하라고 당부한 일화만 봐도 그가 지닌 영향력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관련기사



아이브는 2015년 제품 디자인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본사의 신사옥 애플파크 건설 책임자를 맡았다. 2년 만에 애플파크 준공이 완료되자 디자인 업무 일선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짧은 일탈(?)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다시금 새 도전에 나선다. 애플은 27일(현지시간) 조니 아이브가 올해 말 회사를 떠나며 유명 디자이너 마크 뉴손과 함께 독립 벤처 회사 ‘러브프롬(LoveFrom)’을 창업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쩌면 아이브의 독립은 일찍이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2015년 애플워치 출시를 이끈 이후 아이브가 회사 업무에 관여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의 분석이다. 애플이 제품 그 자체가 아닌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 운용 전략을 바꾸면서 ‘디자인 천재’ 아이브가 설 자리가 더 이상 충분치 않았다는 설명이다.

아이브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세운 회사의 첫 번째 클라이언트(고객)는 애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의 길’을 택했지만, 여전히 애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팀 쿡 애플 CEO도 “애플은 앞으로도 독점 프로젝트를 통해 그와 함께 일하고, 그가 만든 디자인팀과 작업해 그의 재능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과의 돈독한 관계는 여전히 이어질 거라 확언했지만 30년 가까이 함께한 조니 아이브의 빈 자리가 애플로서는 상당히 크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애플의 정체성이라 일컫는 차별화된 디자인 감수성이 점차 무뎌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이브가 떠난 후 애플의 디자인 팀은 두 명의 부사장이 지휘하게 될 것이라고 애플 측은 밝혔다. 지금까지 아이브는 쿡 CEO에게 직접 보고했으나, 이후 부사장 2인 체제의 디자인 팀은 제프 윌리엄스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보고하는 체제가 될 예정이다.

김민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