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두뇌(브레인)’ 남양연구소가 네 번째 진화(4.0)에 나선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자동차에서 자율주행을 하는 모든 이동수단으로 확장하면서 연구개발(R&D) 본부도 조직을 재정비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새 연구개발본부는 미래 이동수단의 골격과 콘셉트를 선행 개발하는 제품통합담당이 신설돼 미리 시장의 변화를 분석하고 신속하게 제품을 만드는 조직으로 탈바꿈한다.
현대차(005380)그룹은 9일 연구개발본부(남양연구소)를 ‘아키텍처기반시스템조직(SBO)’으로 전환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조직 개편은 그룹의 미래 비전을 세우는 정의선 총괄부회장과 BMW 출신으로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과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스포츠세단 G70을 시장에 안착시킨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 사장이 진두지휘했다.
현대차그룹이 연구개발본부를 완전히 개편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 2003년 현대차와 기아차(000270)의 연구개발조직을 통합했고 2006년 플랫폼센터조직(PCO)으로 대전환하며 글로벌 개발체계를 구축했다. 이후 전 세계에서 판매량이 급속도로 늘었고 현대차그룹은 개별 자동차의 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12년 연구개발본부를 기능전문화조직(FMO)로 바꿨다. 시장 변화에 맞춰 세 번의 변화를 꾀한 끝에 현대차는 양산 차 중심의 회사에서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와 고성능 브랜드 ‘N’까지 시장을 확장했다.
하지만 사물인터넷(IoT)과 5세대통신(5G), 인공지능(AI) 기술의 진화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자동차 산업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래 자동차 시장은 차를 넘어서 다양한 운송수단이 이동·물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빌리티’로 확장되고 있다. 사물인터넷에 기반해 모든 기기가 끊기지 않는 초고속 통신으로 연결, 인공지능으로 자율주행하는 체계다. 평평한 배터리로 채운 운송수단 위에 사무실을 올리면 사무실, 짐칸을 올리면 택배차가 돼 쉬지 않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자율주행차 안에 운송 로봇 등이 자리해 직접 택배를 집까지 배달하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현대차는 현재의 연구개발 조직이 이 같은 미래 산업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현재 조직체계는 연구개발본부를 최상위에 두고 그 아래에 PM과 설계·전자·차량성능·파워트레인 등을 개별 조직으로 병렬화한 것이 특징이다. 모두 신차 등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데 적합한 조직 체계다.
하지만 새로 변한 아키텍처기반시스템(SBO) 연구개발본부에는 제품통합당당이라는 조직이 신설돼 자동차는 물론 미래의 다양한 이동수단에 대한 개념을 세우게 된다. 연구개발본부 아래 병렬형으로 나열됐던 조직은 △제품통합개발담당 △시스템담당 △프로젝트매니지먼트(PM) 담당 등으로 단순화된다. 제품통함담당이 미래 모빌리티 운송기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이에 맞춰 PM은 자동차 등 운송수단, 시스템부문은 섀시와 바디, 전자와 파워트레인 등을 개발하는 구조다. PM 담당은 제네시스와 전기차(EV) 고성능, 소형 등 브랜드와 차가 섞인 혼합구조에서 차에 집중하는 차급구조(경형·소형·준중형·중형·대형 등)로 전환한다. 시스템부문은 개발된 신기술이 다양한 차종에 빠르게 적용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한다.
현대차는 조직 개편에 앞서 올해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자동차와 4족 보행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 운송 서비스 기기 ‘엘리베이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이 차에 중심을 둔 회사가 아니라 모빌리티서비스(MAAS), 더 나아가 운송서비스(TAAS)까지 확장하는 개념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제품통합개발담당은 모빌리티의 특성을 자동차에 국한하지 않고 미래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개발하는 연구개발을 맡는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조직개편으로 미래 자동차 산업 변화에 대응할 기술을 확보하는데 속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자동차의 품질·신뢰도 향상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수익성을 높여 다시 R&D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한다는 목표다.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 사장은 “이번 R&D 조직 구조 개편으로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와 고객 요구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연구개발 환경과 협업 방식의 변화를 통해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미래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