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선택하는 데 또 다시 한주가 지났습니다. 민주당은 지난달 28일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합의에 따라 정개특위 위원장과 사개특위 위원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지난 4일에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당일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며 “지도부에 (결정 권한을) 위임하는 것으로 해 다음주 초에 결정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1주일이 흘렀지만 지도부에서 결단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국면에서 공조했던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은 민주당을 향해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아 선거제 개혁 의지를 보일 것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당도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입니다.
일부 의원들은 정의당이 지나치게 민주당을 압박해 오히려 반발을 사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실제 정개특위 위원장에서 교체되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쉽게 말해 해고된 것, 어안이 벙벙하다” “(민주당이) 심상정을 버렸다” “집권 포만감에 취했다” “촛불 시민의 대표 정당을 민주당에서 정의당으로 바꾸자” 등 강하게 민주당을 성토했습니다. 패스트트랙 공조를 이룬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내부에서 선거제 개편에 서로 다른 의견이 대립하면서 여당 협상 파트너가 기존 4당에서 ‘6당’ 수준으로 많아졌다는 점도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입니다. 여당 한 의원은 “협상 파트너는 한 곳일 때 성과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당내 기류가 사개특위로 전환되고 있다”며 “무조건 정개특위를 맡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소식을 접한 정의당은 초기에는 강하게 비판한 게 사실이지만 이후 수위를 낮췄고 지금은 민주당의 결단만을 기다리는 형편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16년 전과 ‘지금’
민주당이 2주 동안 ‘선택 장애’ 상황에 처해있지만 당내 주류여론은 정개특위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발표를 미루는 데는 자유한국당과의 협상에 ‘특위’를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됩니다. 한국당은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여전히 비협조적입니다. 추경을 통과시키려면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관련 국정조사를 수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바른미래당도 가세한 형편입니다. 특위 선택이 정말로 특별해진 배경입니다. 그나마 쥐고는 있는 카드를 쉽게 내줬다가는 패스트트랙 공조도 깨지고 국방장관을 해임시키고 국정조사까지 받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국회는 ○○○당이 과반수를 장악한 여소야대 국회였다. 그래도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야당 지도자들을 부지런히 만났지만 쉽지 않았다. ○○○당은 처음부터 나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완연했다. ○○○당은 ○○○을 단독처리했고, ○○○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 ○○○ 국회의원들은 국회만 열리면 차례로 나서서 대통령을 인신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국회의원 총선은 자꾸 다가오는 데, 여소야대에서 벗어날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안에 한국당과 국정조사, 정경두를 넣어보면 어떠신가요. 사실 ○○○은 한나라당과 대북송금특검법안, 김두관 장관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에 그의 말과 글을 토대로 노무현 재단이 엮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정리한 자서전<운명이다>의 내용입니다. 16년 전 노 전 대통령이 처한 상황과 문재인 대통령이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3년 민주당은 분당됐습니다. 2019년 민주당의 분당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 꾸려진 ‘탄핵동맹’이 패스트트랙 공조로 이어져 ‘입법동맹’으로 거듭날지 공조조차 깨질지 선택의 순간이 놓여 있습니다.
◇노무현의 꿈..정치개혁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제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다시 <운명이다>의 일부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역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가 발전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예가 없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제이다.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는 모두 최종적으로는 정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영남에서는 모든 인재와 자원이 한나라당으로 몰린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으로 몰린다. 그 지역에서는 다른 정당을 통해서 국회에 진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반작용으로 충청도에서도 지역당이 끈질긴 생존력을 유지했다. 수도권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신의 출신 지역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정책 개발보다는 다른 지역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선거운동 방법이 된다. 정책의 차이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감정싸움은 몸싸움으로 전환된다. 모든 정당에서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발붙이기 어렵다. 국회의원을 대폭 물갈이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경험한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 문제였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대도시에서 한 선거구에 여러 명을 뽑고 작은 도시와 농촌에서는 지금처럼 하나만 뽑는 도농복합선거구제라도,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위 결정을 두고 민주당이 좌고우면 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실리(추경·내년 예산처리)추구를 위해 한국당과 협상력을 높일지, 명분(정치개혁)을 위해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고 8월 말까지 연장된 정개특위 로드맵을 짤지 고민은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겁니다. 그럼에도 민주당에게 정개특위는 ‘운명이다’. 다음 주에는 그 운명을 증명할 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미 60일 연장된 정개특위의 기한 중 25%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러가버렸습니다.
한가지 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덧붙입니다. <개혁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분들은 개혁이 원점으로 회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을 것이고, 개혁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도 일방적으로 몇몇이 개혁을 끌고 가는 데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노심초사하지 말고 여러 가지 안을 짜서 국민과 당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2003년 1월 민주당 신년하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