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말 한철균(64) 프로바둑 기사가 9단으로 승단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바둑계에서는 “‘해설 9단’이 진짜 9단이 됐네”라는 반응이 나왔다.
바둑에서 9단의 별칭은 잘 알려졌듯 ‘입신(入神)’이다. 바둑에 관해서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한 9단은 대학 3학년이던 1976년 입단해 43년 만에 입신 기준인 승단 포인트 240점을 넘겼다. 43년간 ‘늦깎이’ ‘비주류’라는 수식어가 익숙했던 그는 한국기원 소속 여든두 번째 9단이 됐다.
한 9단을 최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아직도 새 명함을 파지 않고 ‘전문기사 8단’이라고 쓰인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그는 “6단인 제자한테도 지는데 뭘”이라며 축하 인사에 손사래를 쳤다.
한 9단은 바둑계에서 엘리트 코스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한글을 다 깨치기 전에 바둑을 배워 중학교 때 입단하고 스무 살이 넘어가면 대회 타이틀 하나쯤은 따내는 게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엘리트 코스다. 한 9단은 “저는 초저녁에 대성하기는 글렀던 셈”이라고 돌아봤다. 그는 중2 때 놀러 간 친구 집에서 친구 아버지가 바둑 두는 모습을 보고 ‘신세계’에 빠져들었다. 한 달 뒤 친구 아버지에게 3점을 놓아드릴 정도가 됐다. 한 9단은 “그때가 제 생각에 8급 정도였는데 한 해에 2급씩 늘어 고3 때 1급 수준은 됐던 것 같다”고 했다. 고려대 농학과 74학번인 그는 대학 3학년 때 나간 전국학생국수전의 우승자 자격으로 입단했다. 허구한 날 바둑판 앞에만 앉아 있다 보니 학업은 뒷전이었다. 한 9단은 “박정희 정권 때 휴교령이 내려진 날 학생회관에서 최루가스 맡으면서 바둑을 두던 기억이 생생하다. 4년 내내 여름학기와 겨울학기를 빠지지 않고 수강해야 했다”며 빙긋이 웃었다.
바둑계 비주류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자 한 9단은 “비주류인데다 어쩌면 항상 이방인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선선히 얘기했다. 그는 “주어진 환경은 비주류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다른 분야의 주류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려 했다”고 돌아봤다. 그 길 중 하나가 바로 해설이었다.
‘프로기사로는 초저녁에 대성하기 글렀던’ 한 9단은 1995년 바둑TV가 개국하면서 부쩍 바빠졌다. “지상파 3사와 EBS만 바둑 중계하던 시절에는 자리가 없었죠. 그러다 바둑TV가 생기면서 해설 수요가 많아졌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았어요.” 비유를 곁들인 눈높이 해설로 유명한 한 9단은 인터뷰 중에도 습관처럼 비유를 섞어 얘기했다. 그의 해설은 어렵지 않고 친근하다. 상대 포위에 생긴 구멍으로 뚫고 나갈 때 ‘오솔길따라 솔솔 부는 봄바람’이라고 표현하거나 상대방 손따라 두면 ‘형님 하시자는 대로 한다’고 꼬집는 식이다. 회돌이 치기는 ‘돌아가는 삼각지 물레방아 도는데…’, 곧 죽을 운명인 상황에서는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유리한 형세를 의식해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때는 ‘추위 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한철균표 화법이다.
웃음을 머금게 하는 친숙한 해설은 “바둑 대중화를 위해서는 중간층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이를 위해 역사 속 이야기나 누구나 수긍할 만한 비유를 틈날 때마다 메모해 해설에 활용했다. 어떤 분야든 1주일에 한 권씩 책도 읽었다. 한 9단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이고 둔필승총(鈍筆勝聰)이다. 적는(기록하는) 자만이 살아남고 서투른 기록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고 하지 않느냐”며 사자성어를 비틀어 농담을 던졌다. 기록과 독서가 자신에게 인생의 길을 열어준 경쟁력이 됐다는 얘기다. 요즘 해설 중에는 판이 뜨거워지기 시작할 때 슬쩍 방탄소년단(BTS)의 ‘불타오르네’를 언급하거나 내친김에 BTS 팬클럽인 아미(ARMY) 이야기까지 이어가기도 한다. 한 9단은 “제 해설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안티팬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다 물 흐르듯이 해설하려는 노력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바둑계는 2016년 이세돌과 인공지능(AI)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AI를 활용한 바둑 프로그램 개발이 붐을 이뤘다. 누구나 AI와 대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서 바둑 대중화와 세계화의 길도 열렸다. 한 9단도 해설할 때 AI의 도움을 받는다. 노트북컴퓨터를 이용해 국산 바둑 AI ‘돌바람’의 착점을 실시간으로 참고한다. 3년 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의 룰 미팅에 참석하고 1국 심판까지 봤던 한 9단은 “AI는 바둑계에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바둑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새롭게 확립해야 하는 시기”라고 진단했다. 마흔이 넘어 방송통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배웠던 그가 최근 코딩 공부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프로기사들이 AI에 사실상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인간끼리의 바둑은 무의미해진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펼친다. 한 9단은 이에 대해 “그야말로 견지망월(見指忘月) 격이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못 보고 손가락만 보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바둑뿐 아니라 어느 분야를 가도 AI가 대세다. 그렇게 따지면 인간이 자기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라며 “인격체가 아닌 AI를 인간과 같은 선상에 놓고 위기론을 펼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예도를 지키면서 적정선에서 활용하고 상생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바둑의 가치에 대해 물었다. 한 9단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면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더 공허해질 위험이 있다. 이런 부작용을 어루만질 수 있는 산업을 국가적으로 더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바둑은 몰입의 즐거움과 바람직한 중독성으로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역할까지 한다”고 강조했다.
한 9단은 요즘 하루 3시간씩을 책 쓰는 데 할애하고 있다. 3개 프로그램의 방송 해설과 주 1회씩인 대학 강의, 재능기부 바둑교실로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쓴다. 올가을부터 내년까지 출간 일정이 빽빽하다. 지금까지 낸 책만도 10권이 넘고 앞으로 그만큼을 더 낼 계획이다. 끊임없이 책을 쓰고 방송으로 말하면서 바둑을 알리는 삶이다. 한 9단은 “앞으로의 바둑 인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둑 보급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 프로기사회 회장을 지냈고 바둑계에 쓴소리도 담당해온 그는 “바둑계가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입단은 했지만 대국료를 받지 못해 생계를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 프로기사 활동 말고도 바둑을 통해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55년 서울 △1976년 전국학생국수전 우승, 프로기사 입단 △1978년 고려대 농학과 △1995년 바둑TV 해설 △1999년 제24대 한국기원 기사회장 △2002년 명지대 바둑학과 겸임교수 △2004년 고려대 교양바둑 강의 △2016년 이세돌-알파고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1국 심판 △2019년 한국바둑문화사 설립 △2019년 9단 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