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27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대로변 가로수 키 높이 만한 펜스 뒤로 단일 최대 재건축사업(1만2,032가구)이 추진되는 곳이다. 단지 내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펜스가 낮아져 철거현장이 드문드문 보였다. 둔촌사거리 방향의 저층 2단지 쪽은 철거를 제법 마쳐 한 블록 전체가 맨땅을 드러냈다. 고층 3단지 쪽은 이제 막 옥상을 허무는 상황. 둔촌 1동 주민센터는 임시 공사현장 사무실로 변했고 단지 내 헬스클럽은 조합원 분양변경 신청 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조만간 착공될 이곳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시사하면서 초비상이 걸렸다. 시행 기준일이 관리처분인가 시점으로 소급 적용될 것이라는 관측에 조합원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분양가격을 내린 만큼 조합원의 분담금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조합원 지분도 다시 배정해야 하니 이래저래 혼란이 불가피하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조합원의 이익을 빼앗아 로또아파트 당첨자에게 주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냐”며 언성을 높였다. 조합 측은 연말께 일반분양에 돌입할 계획이었지만 상한제 복병을 만나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곳 일반분양 물량은 자그마치 4,787가구. 새 아파트 공급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분양일정이 안갯속으로 빠져들면서 일반 수요자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최근 서울 지역 분양가격이 급등하기는 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지역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은 2015~2017년 3.3㎡당 1,986만~2,131만원 선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907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분양가상한제는 감정 평가한 토지가격에 정부가 정한 기본형 건축비를 합해 그 이하로 분양가를 산정하는 제도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재도입됐다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민간택지에서는 요건 완화로 사실상 폐지됐다. 현재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를 억누른 상황인데도 상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좀 더 강력한 통제를 가하겠다는 의미다.
상한제가 시행되면 반값아파트까지 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07년 분양가상한제 도입 당시 국토부의 분석을 보면 아파트 분양가격이 전국적으로 16~29% 떨어질 것으로 추정됐다. 이렇게 되면 서울 강남 일부에서는 시세 대비 반값아파트가 분양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뛰는 분양가를 억눌러 집값 안정을 기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반값이든, 반의반값이든 신규 분양물량이 대규모로 계속 쏟아져야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회의적으로 본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낮춘다고 해서 기존 아파트 값이 덩달아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연간 서울 신규 분양물량은 2만가구 안팎에 불과해 이 정도로는 가격조절에 한계가 있다. 서울 주택 거래량은 20만가구쯤 된다. 오히려 기존 시세를 따라잡았던 게 그동안의 경험이었다. 로또아파트 청약 광풍은 그래서다. 반값아파트의 원조인 강남 보금자리 아파트 값은 분양가의 3배쯤 올랐다.
두 번째는 경제논리다. 최고가격제를 실시하면 공급유인이 떨어져 공급부족과 초과수요를 낳는다는 것은 경제학의 ABC다. 빈 땅이 드물어 재건축과 재개발이 아파트 공급물량의 대부분인 서울은 더 그렇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분양가 통제는 집값을 잡기는커녕 공급을 위축시켜 대체수요인 신축 아파트의 희소성을 높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1만가구의 잠실 헬리오시티 입주물량이 쏟아지면서 강남 전셋값을 한방에 잡았다”며 “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공급확대로 집값 상승 압력을 줄이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분양가 통제로 로또아파트 청약 광풍이 집값을 자극하는 역효과도 있다.
어느 나라든 물가가 지나치게 오르면 정부로서는 엄청난 부담이라 가격통제의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가격 규제는 누군가의 손실을 전제로 한다. 공급자는 손실을 내고 수요자는 이득을 본다. 공급 유인이 줄어들면 중장기적으로 가격이 오른다는 게 문제다. 암시장이 등장하고 제품의 품질도 떨어진다. 러시아에서는 정부가 술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보드카 가격을 올렸더니 술에 화학물질을 탄 밀주가 등장했다. 미국은 독립전쟁 때 가격을 통제하는 바람에 군수품을 조달하지 못해 필라델피아 인근 밸리 포지에 진을 친 독립혁명군 수천 명이 추위와 굶주림에 쓰러지는 비극을 겪었다. ‘밸리 포지의 비극’은 정부의 가격통제에 경종을 울리는 경구로 경제학계에서 널리 활용된다. 양준모 교수는 “분양가가 높다지만 강남에 미분양물량이 없다는 것은 수요자에게 그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의미”라며 “이를 시장균형가격으로 보지 않고 규제로 가격을 조정하겠다는 것은 반시장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분양가 통제는 2011년 “기름 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된 ‘알뜰주유소’를 연상시킨다. 국가가 개입해 정유사 과점체제를 붕괴시키면 기름 값을 낮출 수 있다는 환상이 깨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8년이 지난 지금도 ℓ당 고작 30원가량 낮췄을 뿐이다. 오히려 시장 혼란을 초래하고 부실 주유소를 구제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2016년 국책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알뜰주유소 정책이 경쟁 효과가 미미해 사실상 실패했다는 엄혹한 평가를 내렸다. 알뜰 주유소 등장에 인근 주유소가 가격을 내려도 1개월 뒤면 원래 가격을 회복하거나 더 높였다는 것이다. 비싼 기름 값이 담합의 산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했으니 성과를 내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분양가상한제는 양날의 칼이다. 충격 요법에 반짝 효과는 내겠지만 공급부족 문제는 두고두고 부담이 된다. 5년 내내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치렀던 참여정부도 민간 택지분양가상한제를 임기 반년을 남겨둔 시점에야 마지막 카드로 꺼내 들었다. 그만큼 부작용이 크다는 의미다. 분양가상한제와 알뜰주유소의 정책 취지는 공익 추구일 것이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휴대폰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했다가 3년 만에 중단했고 대형서점의 가격덤핑을 막아 동네서점을 보호하기 위한 도서정가제는 지금도 소비자 편익 감소와 자원 낭비라는 비판 속에 존폐 논란에 휩싸여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도입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글·사진=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