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단독] 걸음마 뗀 '신탁방식' 정비사업...발목 잡는 서울시

'표준기준' 만든다며 규제강화

신탁등기 기준까지 추가 신설

구역해제땐 업체가 비용부담

신탁사들 "사업 불가능" 반발

국토부는 장려...'엇박자' 논란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투명화를 위해 도입한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서울시가 신탁방식 정비사업 관련 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막 걸음마를 뗀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규제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정부에서는 부동산신탁사가 시행 또는 대행 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정비업계의 투명성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장려하는 상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 규제 강화 나서는 서울시 = 30일 서울시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시는 최근 ‘신탁업자 정비사업 표준 기준 용역보고서’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업계의 의견을 청취했다. 서울시는 사업의 투명화를 위해 도입한 신탁방식 정비사업에 대해 관련 규정 미비로 오히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지난해부터 관련 용역을 진행해 왔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에 대한 표준을 마련하는 것은 서울시가 전국 최초다.

문제는 서울시가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가장 핵심적인 규제는 현재 토지 면적 기준 3분의 1 이상 신탁 등기해야 가능하도록 한 요건을 대폭 높여 4분의 3 이상이 신탁 등기하도록 한 것이다. 조합방식과 마찬가지로 신탁 방식도 토지 등 소유자의 75% 이상 동의와 동별 소유자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에 신탁 등기 기준까지 추가로 높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비사업 지연 등 각종 문제 발생 시 신탁사 책임으로 간주하도록 했다. 현재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일몰제 규정이 없지만, 시는 신탁방식에도 조합 방식과 같은 일몰제 규정을 적용하고, 구역에서 해제될 시에는 그동안 소요된 비용 등의 책임을 신탁사가 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매몰 비용 부담 등 신탁사가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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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다. 신탁방식 사업 시 예치금을 넣는 규정도 신설했다. 아직 예치 금액이나 예치 방식 등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서울시는 필요할 경우 표준 기준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법적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에 건의한다는 계획이다.

◇ 정부는 장려, 반발하는 업계 = 이에 신탁업계는 의견 제출을 통해 “사실상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규제”라며 강력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주민 동의율 기준이 있는데 토지 신탁 기준까지 강화된다면 누가 신탁 방식을 선택하겠는가”라며 “정비사업은 모든 것이 주민 동의를 받아서 이뤄지는데, 사업 지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신탁사의 탓으로 간주한다는 것도 그야말로 초법적인 발상”이라고 성토했다.

이러한 서울시의 규제는 정부의 신탁방식 정비사업 장려 방침과도 맞지 않다.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리와 불법을 ‘생활적폐’로 규정하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적폐 해소를 추진하고 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거론돼 온 것이 바로 신탁방식 정비사업의 확대다. 2016년 처음 도입된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주택 소유자 중심의 조합방식과 달리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신탁사가 사업을 시행하기 때문에 사업의 효율화 및 투명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현재 여러 조합에서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택하고 있다.

또 다른 신탁업계 관계자는 “신탁업체들은 정비사업의 전문성은 물론 금융사로서 높은 회계 투명성도 준수하고 있다”며 “정비사업 투명화를 정말로 원한다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줘도 모자란데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겠다니 업계로서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업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 방안을 확정한 뒤 오는 10~11월께 기준안을 공고하고, 늦어도 내년 초에는 방안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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