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여는 수요일] 욕실에서

- 박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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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칫솔은 초록색이다


참 예쁘다 도마뱀 같다

손에 쥐고 있으면 파닥

파닥 움직이는 것 같다

치약은 또 얼마나 달콤한가

비누는 매끄럽고 향기롭고

면도 크림 샴푸 린스 샤워젤

풍성하게 거품이 인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면 내가 중산층 같다

내 칫솔은 초록색이다

참 예쁘고 도마뱀 같다

손에 쥐고 있으면 파다닥

빠져나갈 것 같다




아, 우리 집 욕실에서도 칫솔 도마뱀이 여럿 파닥거려요. 정글 도마뱀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서 속상해했더니 욕실로 왔군요. 시인의 혜안 덕분에 등잔 밑 도마뱀을 찾았네요. 참 다행이지 뭐예요. 원시림은 날마다 베어지고 있다던데 욕실만큼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어요. 정글 도마뱀은 우리가 흘려보낸 치약, 샴푸, 린스 때문에 고통 받는데 플라스틱으로 몸 바꾼 욕실 도마뱀은 거품 목욕을 은근히 즐기는 눈치더군요. 이빨 청소해주고 배를 채우니 살생의 업도 짓지 않죠. 꼽등이를 보고도 입맛조차 다시지 않더군요. 파닥파닥 몸부림칠 때 놓치면 안 돼요. 중산층 지킴이거든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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