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불경기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바이네르에서 불경기란 금기어입니다. 여러분도 위축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구두공 출신의 신발 사업가로 유명한 김원길(58·사진) 바이네르 대표는 1일 경기도 일산 본사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불경기 탓을 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지 않겠냐”면서 장기불황에 빠진 한국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모두가 어렵지만 이럴 때일수록 세상이 좋아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난관을 헤쳐나가자는 게 김 대표가 중소기업계에 던지는 화두다.
김 회장은 널리 알려진 대로 지난 1984년 국제기능올림픽 제화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제화공 출신이다. 1991년 자신의 사업을 시작해 여성용 컴포트화 등을 대히트시키며 성공했고 현재까지 신발 분야에서 굳건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그런 그가 “사업하면서 불경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다소 의외다.
“매년 경제가 좋지 않다고 했잖아요. 그렇다고 사업을 안 할 수 있습니까. 불경기 핑계를 대고 뒤로 숨으면 안 됩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일수록 연구개발에 집중해 세상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해야죠.”
그렇다고 해서 김 대표가 현재 경기가 과거에 비해 낫다고 보는 건 절대 아니다. 김 대표는 현재 경기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나쁜 것으로 체감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먼저 불경기 탓을 해버리면 회사 구성원들도 모두 ‘경기가 이런데 어쩌겠냐’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벌써 20년 전에 직원들과 약속했어요. 불경기란 말 하지 말자고요. 요즘 들어 특히 여기저기에서 불경기라고 하는데 이 구간을 지나는 동안 겨울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넘어가야 하잖아요. 저는 반대로 ‘아무리 불경기라도 신발 안 신고 살 거냐’는 생각을 합니다. 불경기를 방패막이 삼지 않겠다는 각오죠.”
김 대표는 현재의 불경기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때문에 히트 상품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 불경기를 넘어가게 해주는 힘은 바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히트 상품이란 신념에서다.
“1996년에 바이네르의 최대 히트상품인 컴포트화가 나왔어요.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는데 판매가 급감하는 와중에도 히트상품은 팔리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연구개발을 통해 세상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요.”
같은 맥락에서 김 회장은 기업도 ‘공부’를 게을리 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정의하는 공부란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도록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 김 대표는 “세상이 필요로 하면 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케팅 측면에선 ‘칭찬’으로 불경기를 이겨내야 한다고 김 대표는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거래처를 칭찬해주라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거래처를 칭찬하면 그 칭찬이 돌아다니다 결국 축적됩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내가 한 칭찬이 쌓여 언덕이 되고 그게 결국 내가 어려울 때 비빌 언덕이 됩니다.”
김 대표의 목표는 현재의 불황을 이겨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세계 무대를 점령하겠다’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현재 중국에서 샘플 판매를 시작했고 베트남·인도네시아·중동·미국 등을 동시 공략하고 있다.
“중요 시장 몇 곳에 올인하는 전략은 피하려고 합니다. 리스크가 크니까요. 규모가 작더라도 시장이 여러 곳 있는 게 좋다고 판단하고 여러 나라를 동시에 뚫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외국의 각계 리더들에게 바이네르 신발을 신게 해서 검증을 받는 방식으로 시장을 열겠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나 영사,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정치인 등을 초대해 바이네르의 경영이념을 설명하고 시장 진출의 조언을 듣고 있다. “외국 손님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나도 행복하게’라는 바이네르의 경영이념에 깊게 공감합니다. 저도 이 이념을 지키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세계 정상급 구두 기술도 있잖아요.”
지난해 마련한 16m 길이의 요트 ‘티아라’호는 고객과 회사 임직원을 위해 사용된다. 김 대표는 “우리 직원과 고객에게 무엇으로 보답할까 고민하다가 살면서 쉽게 해보기 힘든 경험을 선사하자는 생각을 했다”며 “이렇게라도 작은 행복을 나눌 때 기업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웃과 행복을 나누는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게 펼친다. 2007년 5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어르신을 위한 효도잔치를 열었고, 회사 인근 군부대에서 우수 장병을 선발해 해외 연수도 보내준다. 올해는 양파 소비 촉진을 위해 양파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김 대표의 최종 목표는 500년 뒤 화폐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가는 것. “돈이 많다고 돈에 얼굴이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아름다운 것을 많이 남겨야지요. 저도 500년 뒤 화폐의 인물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 사회에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남기겠습니다.”
/일산=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