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쉽게 제조되는 화장품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심희정 생활산업부장

한국 화장품 산업은 활황이지만

피부에 쌓이는 경피독 매우 유해

제조사·소비자 심각성 자각 못해

선진국선 '착한 성분' 경쟁 한창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김모 대표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의 모친이 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김 대표의 큰오빠도 덩달아 앞을 볼 수 없게 됐다는 비보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학병원 의사가 “어떤 샴푸를 썼느냐”고 물었다는 얘기도 함께 털어놨다. 그 이유인즉슨 건강검진 결과 혈액 내 유해한 케미컬(화학성분) 농도가 너무 높게 나왔기 때문으로 ‘먹는 것보다 더 무섭다는 경피독(피부에 쌓이는 독)’으로 인한 부작용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사실 어머니와 장남인 오빠 둘만 유일하게 같은 샴푸를 15년간 써왔다”면서 “그때야 샴푸에 들어간 성분을 의뢰해 분석해보니 화학 계면활성제 ‘소듐라우릴설페이트’가 다량 들어 있었다”고 고백했다. 성분 분석앱 ‘화해’를 보면 ‘소듐라우릴설페이트는 피부를 통해 침투가 쉬워 심장·간·폐·뇌에 5일 정도 머물면서 혈액으로 발암물질을 보내며 백내장의 원인이 되고 특히 어린이의 눈에 상해를 입힐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테러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독극물 수준의 유해 화학물질에 심각히 노출돼 있다. 바로 우리가 믿고 써온 화장품이나 샴푸·폼클렌저·보디워시 등 목욕 용품에서 이름도 어려운 성분 때문에 원인 모를 병에 걸리고 있다는 얘기가 의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오모리 다카시는 자신의 저서 ‘음식독보다 더 무서운 경피독’에서 여성들은 매일 화장으로 515개 화학물질을 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먹는 독은 그나마 체내에서 해독 가능성도 있지만 경피독은 순식간에 흡수되고 90%가 축적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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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화장품에 들어가는 유해 성분에 대해 지난 10년간 조사를 해온 유럽은 그들의 국민건강을 위해 성분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이로써 내년 1월 31일부터 화장품 총중량의 0.1% 이상 실리콘을 넣은 제품의 출시를 금지한다. 문제가 된 실리콘은 ‘사이클로펜타실록산’으로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화장품 사용제한 원료로 지정한 것이다. EU는 스물여섯 가지 향료에 대해서도 알레르기 유발 의심 성분으로 규정해 경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여러 개의 화장품 브랜드가 생겨날 정도로 화장품 산업은 여전히 활황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2년 829개였던 화장품 제조판매업체는 2017년 현재 1만1,834개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한국에서 사업한다는 사람들치고 화장품 브랜드 하나 만들지 못하면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란다. 최근 2~3년 사이 직접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찾아오는 지인들도 부쩍 늘었다. 그들 중 저가의 실리콘과 계면활성제로 적당히 버무린 화장품도 적지 않았다. 원료비 500~700원 등 원가 4,000원에 소비자가격을 소비자가격 4만원 초반으로 책정한 한 기업의 대표에게 유해 성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지적을 하자 “그 성분을 추가해야 제품이 안정화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넣었지만 아주 조금 넣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독이 적든 많든 독은 독인데 그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한국의 성장동력으로 ‘K 뷰티’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소비자나 제조사 모두 경피독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저가의 실리콘이나 케미컬 성분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제조사에 대해 분노하지만 바르는 것으로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제재도 경고도 없다. 선진국은 벌써 피부에 유해한 성분을 배제한 ‘클린뷰티’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며 착한 성분 경쟁이 한창이다. 뷰티강국으로 떠오른 한국이 오랫동안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해 제조사나 소비자는 피부에 바르는 독의 위험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yvette@sedaily.com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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