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종목·투자전략

[동십자각] 주식에는 애국마케팅 안 통한다

이혜진 증권부 차장




“해외 주식 아직도 안 하세요?”

요즘 국내 주식에 투자하면 ‘재테크 문외한’ 취급을 받는다. 주식 좀 한다는 투자자 치고 계좌에 미국의 정보기술(IT) 우량주나 중국의 대형 소비재주를 안 가진 이가 드물다. 기관투자가들도 마찬가지다. 증시의 구원투수였던 연기금들조차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고 있다. 올 들어 개인투자자들은 5조5,000억원, 기관투자가는 1조6,000억원의 주식을 팔았다. 이 매도물량을 외국인들이 받아주며 한국 증시의 버팀목이 됐다. 해외 투자가보다 국내 투자자가 더 한국의 증시를 믿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해외로 자본이 빠져나가는 추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국내 증시가 외국인 매수세에 기대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이들마저 한국을 떠난다면 국내 자본시장의 공백 상태가 초래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주식 발행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61%나 줄었다. 자본시장의 자금은 채권이나 예금에 들어가는 자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기업의 미래에 베팅하겠다는 ‘패기 넘치는’ 돈이다. 위험을 감수하려는 돈이 줄어들수록 자본시장이 노쇠해지고 경제도 활기를 잃는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 주식을 외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장하는 기업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지만 이에 대한 해법을 강구하기란 쉽지 않다. 규제 완화와 기업의 혁신 노력이라는 방안은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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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해결법은 국내의 자금이 모험적인 자본시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손보는 일이다. 무엇보다 주식시장에서 장기투자를 할수록 유리하게 세제를 손봐야 한다. 펀드·주식·파생상품의 투자손실을 합산해 과세하고 과세이연이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 또 연금계좌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등을 통해 자본시장에 장기투자할수록 확실한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주식거래세를 찔끔 인하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자본시장에 돈을 묻어두는 게 유리하도록 판을 짜는 게 중요하다. 자본시장의 돈은 기업 성장의 자양분이자 채찍이 된다.

미국의 혁신적인 기업들은 역동적인 자본시장의 토대 위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벤처투자부터 스케일업 펀드, 기업공개, 상장 후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조달까지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자금 유입이 가능하도록 자본시장이 체계적으로 형성돼 있다. 우리도 이 같은 자본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돈이 자본시장에 들어와 장기적으로 머물며 수익을 내게끔 하는 기틀 마련이 절실하다.

일본의 횡포로 나라 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는 일본의 여론을 움직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위기에 빠지는 날에도 과연 해외 주식 대신 국내 주식을 사자는 애국 마케팅이 통할까. 정책 결정권자들은 국내 자본시장이 국내 투자자로부터 더 철저히 외면받기 전에 하루빨리 판을 까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hasim@sedaily.com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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